生死 人生 愛

세상 사람들은 죽으면 인생이 다 끝나는 줄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새로운 출발인 것입니다.

true2020 2014. 7. 25. 15:51

▣ 1970.9.13(일) 통일교인의 자세. 수원교회.    

034-262 우리는 이 땅 위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그네같이 잠깐 살다가 영계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 때에는 그냥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으면 인생이 다 끝나는 줄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새로운 출발인 것입니다. 

 

만약 복중에 있는 아이가 태어날 때 자기가 태어나는 것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아기가 복중에 있을 때는 공기가 있는 이 지상에 태어나서 호흡을 통해 생명의 요소를 공급받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차원이 높은 제2의 생명의 출발이 복중에서 탄생하는 그 순간부터 벌어지는 것처럼 제3의 세계도 죽음을 통해서 육신을 벗게 될 때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물질의 한계권 내에 있던 개인이 그 한계권을 넘어서 모든 것을 초월한 입장에서 자각된 자아로 활동하는 세계입니다. 그 세계가 영계입니다. 그 세계에 가는 것은 어린애가 태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애기가 10개월 동안 복중에서 부모의 영양소를 받아 가지고 자라는 것처럼 이 지상에 사는 여러분도 낳아준 부모, 땅의 부모, 하늘의 부모 이 3대 부모를 통해 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낳아 준 부모가 있지요? 또 땅도 여러분의 부모입니다. 여러분의 몸뚱이를 키워 주는 것은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마음과 몸이 있듯이 몸뚱이를 낳아 준 육신의 부모가 있는 동시에 마음의 부모가 있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부모는 하나님입니다. 

 

이 3대 부모를 모시는 생활을 해 나가는 것이 육신 생활이라는 것입니다이렇게 여러분은 3대 부모의 인연 속에 혜택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의 부모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이요 또한 육신의 부모가 없어도 안 되는 것이요 마음의 영원한 부모가 없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우리가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그것은 영원한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갈 때 어떻게 가야 되느냐? 우리가 복중세계에서 10개월 동안 부모의 영양소를 받고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땅 위에서 사는 동안에 부모의 사랑을 받고 가야 됩니다. 물질적인 생활에 있어서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정신적인 생활에 있어서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가야 합니다. 

 

100년이라는 한계선 내에서 일생을 마치고 제3세계로 출발하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입니다. 복중에서부터 잘 자라야 건전한 아이가 태어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세계에서도 잘 지내야 합니다.

 

타락한 인간으로서 이 지상의 생활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려면 여러 가지 원리적인 조건을 세워야 되는데 이런 조건을 세우지 못하고 가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은 늙어 죽을 때까지 120명은 전도해야 됩니다이스라엘 민족이 지파를 편성한 것을 보면 야곱 가정의 12형제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 12형제를 중심해 가지고 70식구를 형성했으며 이 70식구에서 120문도가 생겼습니다. 이 70식구는 종족을 대표합니다. 모세 시대에는 12지파장과 70장로를 중심 삼아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움직인 것입니다. 

 

120문도는 세계를 대표합니다. 예수님도 120문도를 중심 삼고 출발하려고 했지만 그것을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갖추어 놓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