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내력의 동기 4가지.
1) 나는 아버지의 아들딸이라는 것.
2) 아버지와 나는 같이 가야 한다는 것.
3) 내가 안 가면 아버지가 가셨다가도 다시 돌아오셔서 나와 함께 가셔야 한다는 것.
4) 내가 여기에서 주저앉으면 아버지는 가셨다가 다시 오셔서 또 끌고 가야 된다는 것.
▣ 1964.1.1(화) 승리적 주관자가 되자. 전본부교회.
- 1964년 벽두 연두 훈시.
013-154 모든 것을 참고 넘어가려면 그것을 넘어가기 위한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인내력의 동기를 무엇으로 삼아야 하느냐?
나는 아버지의 아들딸이라는 것, 아버지와 나는 같이 가야 한다는 것, 내가 안 가면 아버지가 가셨다가도 다시 돌아오셔서 나와 함께 가셔야 한다는 것, 내가 여기에서 주저앉으면 아버지는 가셨다가 다시 오셔서 또 끌고 가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 번에 가지 못하면 세 번에 거쳐 가게 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림으로 말미암아 십자가로 갖다가 십자가로 와서 십자가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개인에서 그런 일이 성사되지 않으면 개인에게 그런 곡절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요 가정에서 그것이 해결되지 않을 때는 가정에서 그런 곡절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이 갔다가 다시 와서 또다시 가야 하는 것입니다. 민족 국가 세계에 있어서도 같은 이치를 통하여서 가야 합니다. 이것이 부자간의 인연입니다. 같이 가야 할 타락의 한이 있는데 같이 가지 않으면 인간이 모든 고통과 슬픔을 당하면서 가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근본적으로는 아버지와 나, 둘뿐입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제삼자의 후원을 받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저나라에 갔을 때 그가 여러분보다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게 되면 모르지만 그렇지 못한 자리에 있게 되면 여러분들이 그 사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렇듯 탕감복귀노정은 결코 후원받아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천사의 후원도 받지 않고 가는 길이요, 동지의 후원도 받지 않고 가는 길이요, 오직 홀로 가는 길입니다.
013-155 나는 형무소에서 쇠고랑을 차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들이 뜻을 대하여 저런 고통을 받으면서도 하나님과 더불어 가면 얼마나 복이 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까? 또한 그런 사람을 보고 내가 뜻을 위하여 저렇게 비참하고 저렇게 고통을 당해도 괜찮다 하는 생각을 가져 보았습니까?
만일에 그러한 길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못 가면 하나님이 가야 됩니다.
여러분은 세계적인 비참, 슬픔 혹은 고통을 볼 때마다 그것들은 남의 것이 아니라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 인류를 눈물과 피와 땀으로 대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록 실체로 그런 일을 행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심정을 중심 삼고 눈물과 피땀을 통하여 마음과 행동이 일체가 되었다는 그런 입장에 서게 되면 그럼으로 말미암아 실제로 행동했다는 조건을 안고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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