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정성 신앙 회개

참된 신앙길이란? - 12가지.

true2020 2021. 8. 23. 17:35

1. 희생의 길.

 

1970.5.24(일) 전본부교회. 남은 때.

031-155 여러분들에게는 이러한 신앙길을 개척해 가야 할 각자의 책임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여기에 얼마나 시간을 소모했으며 얼마나 자기 자신을 소모했느냐? 이것이 탕감의 요인을 제거시키느냐 못 시키느냐를 좌우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오늘날 신앙길은 무슨 길이냐? 여러분이 알기로도 희생의 길일 것입니다. 그러면 이 희생은 무슨 희생이냐? 자기 생애의 희생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용인을 투입하는 길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육신도 여기에 말려 들어가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전체를 중심 삼은 희생과 자기 자체를 중심 삼은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

 

그 시간이 길고 자기 자체의 희생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기 일대에 대한 탕감의 양을 비례적으로 청산지을 수 있는 것은 정당한 이치입니다.

 

2. 복귀의 길.

 

▣ 1975.4.6(일) 참된 신앙길. 전본부교회.

077-138 그러면 참된 신앙길 할 때 신앙길은 무슨 길이냐? 복귀의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개인적인 종의 시대가 있어야 되고 가정적인 종의 시대를 거쳐야 되고 종족적이요 민족적이요 국가적인 종의 시대를 거쳐야 되고 세계적인 종의 시대를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1) 사방을 부정하고 한 곳만을 알고 가는 길.

 

▣ 1971.6.20(일) 상봉의 기회. 전본부교회.

045-117 신앙길은 부정하며 가는 길입니다. 사방을 부정하고 한 곳만을 알고 가는 길입니다.  

 

2) 봉사 희생하는 것입니다. 

 

▣ 1985.10.4(금) 천승일. 벨베디아.

136-149 여러분은 타락성을 이어받고 있어요. 여러분들을 보면 사고방식이 전부 다 나라고 하는 것을 중심 삼고 있어요. "나는 교회 식구다. 나는 신앙인이다. 나는 학자 집안 출신이다" 한다구요. 하나님에게는 그거 다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사탄의 개념이라구요. 먼저 모든 것을 부정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진짜 신앙길이란 나를 부정하는 것이요 봉사 희생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그걸 싫어하지요. 희생 봉사는 다 싫어하는 단어요, 일입니다. 선생님도 그래요. 그렇지만 왜 이걸 이렇게 강조하는 줄 알아요?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께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인 길을 제시하는 겁니다. 알아듣겠어요? 모든 걸 부정하라구요.  

 

3) "저의 짐은 제가 지겠습니다"

4) "하나님이여, 저를 배반하시옵소서."  

 

▣ 1970.4.12(일) 개척자의 길. 전본부교회

031-048 나라는 존재는 역사적인 죄의 인연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을 벗어나려면 역사를 대신해서 회개를 해야 합니다. 또한 이 시대의 산물이니 시대를 대신하여 회개해야 합니다. "과거의 아담 가정,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 모세 노정에 있었던 잘못된 모든 사실들이 저희 자신에게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저희 가정만은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협조해 주시지 않아도 저는 그런 길을 안 가겠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불쌍하게 생각하셔서 협조해 주신다고 해도 저의 짐은 제가 지겠습니다."라고 하는 다짐을 해 보았어요?  하나님은 그런 조건을 세우시기 위해 여러분들 십자가의 노정으로 몰아내는 것입니다.  

 

* 그래서 이중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나온 걸음이 아니냐. 그러니 "하나님이여, 저를 배반하시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탕감 복귀하는 거예요.

 

"저를 모른다 하시옵소서. 최후의 수난의 때까지 당신이 저를 몰라본다 하더라도 저는 효의 도리를 다하겠습니다. 이 길은 응당 제가 가야 할 길입니다."라고 하는 결의로 나서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이 그를 안 도와주더라도 그의 후손은 영원히 도와주고 싶은 거예요. 심정의 세계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은 어려움을 당하면 당할수록 입을 다물고 나를 용서하시는 아버지 앞에 내 환경을 지켜보시는 아버지 앞에 수치스러운 꼴을 어떻게 보이겠느냐 하면서 "제가 이것을 책임지고 가겠습니다" 할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담판을 지어서라도 틀림없이 가겠습니다. 꼭 갑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오냐, 너, 갈 거야? 그럼 어디 가 봐라" 하실 겁니다. 사탄의 공격을 받아라 이겁니다. 그런 자리에서 극복하고 가야 합니다. "응당 받아야지요." 하면서 가야 한다는 겁니다.   

 

4. 신앙길은 제일 겁나는 길.

5. 한번 출발했으면 끝까지 가야 할 길.

 

▣ 1969.11.30(일) 신앙자의 각오. 전본부교회.

027-105 여러분 백운대만 올라가더라도 조난당하는 사고가 벌어지곤 하는데 신앙길은 어떤 길입니까? 신앙길이라는 것은 복잡한 길입니다. 제일 겁나는 길입니다. 한번 가다가 실수하면 후퇴해서 다시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그것으로 마지막입니다.

 

한번 출발했으면 끝까지 가야 할 길입니다. 가다 말다 하면서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한번 떨어지는 날에는 크나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한번 기운을 잃어버린 사람은 다시 회생하기 어렵습니다. 보통 길은 가다가 절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으면 다른 길로 피해 갈 수 있지만 신앙의 길은 가다가 떨어지면 大絶壁이기 때문에 蘇生할 길이 없습니다.

 

6. 신앙길은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도의 지도자들과 인연 맺어 가지고 높은 단계로 하나씩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 1970.7.12(일) 하늘이 찾아온 길. 전본부교회.

032-163 신앙길은 자기 나름대로 판단할 길, 자지가 바라보는 그런 길로 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앙길은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도의 지도자들과 인연 맺어 가지고 높은 단계로 하나씩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대번에 "예수님!"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리를 놓아서 가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의 평면적 생활에 있어서 다리를 놓기 위해 교회면 교회를 가게 될 때 그 교회에는 반드시 지도자가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 지도자에게 중간 다리를 놓아주어야 할 책임자가 있기 때문에 찾아오는 교인들을 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7. 죽어서 할 고생을 살아 있을 때 하는 것이 도의 길입니다. 

 

▣ 1970.7.28(화) 고생과 실적. 전본부교회.

- 유효원 전 협회장 장례식 후 "생사의 한계" 제목으로 말씀하신 후의 말씀.

 

033-009 신앙길은 죽음길을 해결하고 넘어가는 길입니다. 죽을 때가 되면 죽을 준비를 해야 되는 겁니다. 그것을 해결 짓고 나서는 길이 통일교회가 가는 이 길입니다.

 

* 죽어서 할 고생을 살아 있을 때 하는 것이 도의 길입니다. 탕감이 그것입니다. 영원히 영원히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 있는 인간들로 하여금 7, 80년의 생애를 통해서 온갖 지옥 생활을 땅 위에서 맛볼 수 있는 골짜기 깊은 골짜기를 지나가는 것이 탕감이요 그 골짜기를 지나가기 위한 길을 닦자는 것이 종교입니다.  

 

8. 자기 스스로 개척해 가는 길.

 

▣ 1971.3.4(목) 전도와 정성. 중앙수련원.

- 3월 지구장 회의.

 

042-171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은 자기 스스로 개척해 가는 길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신앙길을 가는 데 있어서 명령을 받아 가지고 움직이면 안 됩니다. 그것은 일하는 것이지 신앙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신앙이 올라가고 있는가 내려가고 있는가를 스스로 알아서 조절해 가지고 하늘땅을 붙들고 거기에 화해서 하나님 앞에 정성을 들이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9. 신앙길은 7년 이상의 고용살이를 거쳐야 한다.

- 야곱 21년 노정.

10. 극복의 길이다.

- 모세이 10대 재앙.

 

▣ 1971.8.22(일) 참된 식구의 가치. 전본부교회.

047-116 그렇게 되어 가지고 형제끼리 싸우는데 축복을 빼앗긴 형 에서가 화가 나서 야곱을 때려죽이려 할 때에 야곱은 외심촌 라반의 집에 가서 21년 동안 고용살이를 했습니다. 고용살이가 다른 것이 아니에요. 신앙길은 고용살이를 거치지 않고는, 7년 이상의 고용살이를 거치지 않고는 못 가는 노정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7년 노정이 있는 것입니다.

 

047-118 자, 하란으로 간 야곱이 고용살이를 21년 동안 했다구요. 갖은···. 라반이 야곱을 잘 속여먹었지요. 거기에서 야곱이 10대 억울함을 당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억울함을 당하지 않고는 그것을 벗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거꾸로 된 자루를 뒤집듯이 쭉 벗겨야 돼요. 뱀이 허물을 벗듯이 벗겨야 돼요.

 

그것이 편안한 자리에서 되겠어요? 뱀이 허물을 벗을 때는 대가리를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틀어 대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옛날이 내가 그런 것을 취미 삼아 아주 많이 보았습니다. 뱀이 대가리를 뒤로 틀어 재끼고 몸뚱이를 거꾸로 틀어 대는 거라구요. 그런 거예요.

 

그 과정에는 극복해야 할 10대 요인이 있는 것입니다. 라반이 야곱을 10번이나 속였지요? 여러분, 모세 때 10대 재앙을 알지요? 그래서 그런 것입니다.

 

또 사람들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요? 10년 단위를 중심 삼아 가지고 인생을 재고 있습니다. 그런 걸 볼 때 10대 환난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도 그래야 됩니다. 그것을 딱 넘으면 12단계까지 넘어갑니다. 그런 일들이 다 원리적으로 벌어져 나가는 거예요.

 

* 신앙인은 10대 재앙과 같은 고빗길을 극복해야 됩니다. 신앙길은 극복의 길입니다.

 

11. 신앙길은 불평을 불허한다.

 

▣1972.6.25(일) 신에 대한 체휼과 우리의 자각. 전본부교회.

058-309 주체나 대상 관계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주체를 위하든가 대상을 위하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주체와 대상이 없으면 모르지만 있으면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절대적으로 위했는데 망할 수 있는 자리에 간다 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만들어서라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만들어서라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 언제나 여러분이 생각할 때는 하늘은 주체다 하고 생각해야 됩니다. 내 눈의 주체는 하늘이다 그러니 내가 보게 될 때 "혼자 보지 말고 주체를 위해 봐야지" 그래야 된다구요.

 

* 그레, 주체와 대상 관계의 이러한 인연을 틀림없이 알았다 할진대는 전폭적으로 모든 것이 주체를 위하는 것이 되어야 된다구요. 보는 것도 그렇고 듣는 것도 그렇고 또 먹는 것도 그렇습니다.

 

밥을 먹은 때도 "아이 맛있다. 아이 맛있다" 이렇게 먹는 건 자기를 위해서 먹는 것이지만 주체를 위해서 먹으면 "참 고맙기도 하지" 그러는 것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주체를 위한 대상의 자리는 불평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불평이 있을 수 있어요? 불평은 망동입니다. 파탄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은 불평을 불허한다구요. 무엇을 불허해요? 응? 불평을 불허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감사만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됩니다.  

 

12. 신앙길에서의 주의점.

 

1) 조급하게 가지 말라.

 

▣ 1970.12.23(수) 복귀의 한계점. 전본부교회.

037-122 봄이 되면 자연적으로 나무에서 꽃이 피는데 나무가 꽃을 피우려면 꽃을 피울 수 있을 만큼 자라야 됩니다. 이제 겨우 싹이 트는데 거기에서 꽃을 피울 수 있겠어요? 꽃이 피기를 바라면서 빨리 커야 한다고 나무를 잡아당기면 되겠어요? 뽑혀지면 그것으로 끝이에요. 꽃은 자연적으로 피어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길은 조급하게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천년사를 창조해 내는 길이기에 조급하게 가서는 안 된다 는 것입니다.  

 

2)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 1971.1.31(일) 때를 아는 자가 되자. 중앙수련원.

040-165 신앙길은 매정한 길이요 냉정한 길입니다. 에누리가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사정을 봐주고 도와주는 경우가 있지만 복귀의 길에는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때를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때를 한번 놓치면 그때는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에서는 언제나 조심해야 합니다.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 자기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을 종합하여 그때와 어떻게  주파수를 맞춰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뜻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