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身 善惡 행 불행

악한 사람은 벌받아 죽는 것이에요. 그러면 선한 사람은 왜 죽느냐? 그 나라, 그 민족을 살리기 위해 제물이 되어 죽더라 이겁니다.

true2020 2019. 11. 8. 12:36

▣ 1968.2.4(일) 탕감복귀의 한계와 우리의 소원. 전본부교회.

- 참부모님 탄신 기념일.

 

158-308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선한 길을 가는 가정을 치리하는 주인이 있걸랑 그 가정이 망한다고 낙심하지 말라 이겁니다. 낙심하지 말라 이겁니다. 내가 어떤 자리에서 이 망하는 자리에 들어가 앉아도···.

 

무슨 사변이 나든가 전쟁이 나게 될 때에는 선한 사람도 죽고 악한 사람도 죽습니다. 악한 사람은 벌받아 죽는 것이에요. 그러면 선한 사람은 왜 죽느냐? 그 나라, 그 민족을 살리기 위해 제물이 되어 죽더라 이겁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망하는 것도 그렇다는 거예요. 망하는 것이 나쁜 줄 알았더니 망하는 것도 좋은 수가 있더라 이거예요. "그거 무슨 말이 그래? 망하는 데도 줗은 수가 있어? 그런 말이 어디 있나?" 하겠지만 그런 말이 있어요.

 

들어 보라구요. 자고로 그 가정이 죄를 져 가지고 악당의 후손이 돼 가지고 벌받는 것은 깨깨 망해야 돼요.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후손인데 자고로 선한 선조가 되어 있는데 난데없이 그 가정이 망하는 궁지에 빠져 들어간다 하면 그 한 가정이 망함으로 말미암아 그 종족이 살 수 있는 복의 문이 열리는 거예요. 

 

그 한 가정이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 민족이 살 수 있는 길이 생겨나는 거예요. 그 한 사람이 세계적인 사건을 걸어 가지고 망하는 궁지에 빠짐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그로 말미암아 인연이 되어 살길이 열려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두 종류의 망하는 길에 봉착하는 예가 있다 이겁니다.  

 

예수님도 죽는 데는 마찬가지로 죽었어요. 강도도 죽는 데는 마찬가지로 죽었어요. 생사의 기로는 한 곳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사망 세계의 죽음은 강도의 죽임이요, 생명의 새 세계의 죽음은 예수의 죽음이다 이겁니다. 죽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무엇이 다르냐? 내용이 다르더라 이겁니다. 하나는 지옥 직행이고 하나는 천국 직행이다 이거예요. 맞아요, 틀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