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2.7.23(일) 전본부교회. 우리의 자세. 059-223 내가 어떤 승리를 했다고 자랑하는 그 순간은 자기 일생에 있어서 최후의 기쁨의 통고가 되는 동시에 그것이 끝남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그 이상의 비운을 맞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한 장면을 자랑하고 그 자랑이 끝나자마자 그 이상의 슬픔이 찾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어떤 면을 보게 되면 비운에 싸여 가지고 지극히 낙망한 자리에서 "나는 이제 절망이다. 나는 이 이상 갈 수 없다. 나는 이 이상의 소망을 바랄 수 없다"고 하지만 그 누구와의 어떤 인연을 통해 가지고 절망의 자리에서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소망을 갖고 힘차게 재기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람은 언제나 자신을 가질 수 없는 것이요, 슬퍼하되 절망적인 자리에서 슬퍼만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자기가 자랑할 일이 있다면 그 자랑은 오늘의 자랑으로서 끝나지 말길 바라야 됩니다. 자랑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자랑은 내일의 빛나는 계승을 할 수 있는 자랑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만으로 끝나는 자랑이 되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만의 자랑이 되게 된다면 다음에 비운이 찾아오면 그 비운은 도리어 더 비참한 것이 아니냐. 자랑하지 않았다면 더욱 더 좋았을 것이라고 느낄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 아무리 絶望 가운데 있더라도 그 絶望은 絶望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만사는 돌아가는 것이 理致입니다. 한 번 높은 때가 있으면 낮은 때도 있는 것입니다. 양지와 음지가 서로 교체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내가 아무리 슬픈 자리에 섰다 하더라도 그 슬픔은 보다 빛날 수 있는 기쁨을 빛내 주기 위해서 찾아오는 슬픔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슬픔을 소화하고 그 슬픔을 기쁨으로 맞아 넘어서게 될 때 그 후에 찾아오는 기쁨이 있다면 그 기쁨은 그야말로 그 슬픔이 깊었던 이상의 빛날 수 있는 기쁨이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생각하게 될 때 아무리 슬픈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슬픔으로서 모든 것을 청산하지 않고 슬픔 후에 찾아올 수 있는 빛난 기쁨의 한때를 위하여 그 시간을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을 가진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으로 끝을 맺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 塞翁之馬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서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말. 옛날에 새옹이 기르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나서 노인이 낙심하였는데, 그 후에 달아났던 말이 준마를 한 필 끌고 와서 그 덕분에 훌륭한 말을 얻게 되었으나 아들이 그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으므로 노인이 다시 낙심하였는데, 그로 인하여 아들이 전쟁에 끌려 나가지 아니하고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중국 ≪회남자≫의 ‘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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