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세기 22장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여호와께서 준비하심)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19 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
1. 아들보다도,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절대적인 신앙을 바라는 하나님의 원칙적인 내용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명령을 하는 하나님.
▣ 1972.3.22(수) 새로운 메시아와 공식적 역사 섭리. 후렌즈 미팅 하우스.
- 영국에서 3일간 공개 강연회.
054-149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예요. 데라의 아들로 태어나서 잘살고 있고 재미있게 사는데 하나님이 명령하기를 "야, 아브라함아, 네 집을 버리고 타향살이 길을 떠나라"고 한 거예요.
거기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 나는 여기 우리 집에서 사는 것이 좋습니다." 라고 했다면, 뜻이고 뭐고 다 안 된다구요.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길을 떠나 집시의 생활을 하며, 국경을 넘나드는 그런 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고생을 무릅쓰면서도 하나님이 이 길을 내몰 때 하신 약속을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절대적인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할 수 있었고,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100세에 낳은 이삭을 모리아산에 데리고 가서 잡아 제사지내라고 하니 믿겠어요? 그러나 절대적인 신앙, 아들보다도,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절대적인 신앙을 바라는 하나님의 원칙적인 내용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명령을 하는 하나님은 얼마나 가슴을 조이며 ひやひやする。気をもみながら。, 얼마나 아픔을 느끼셨겠습니까?
만일 그것이 실패하는 날에는 역사적인 수고가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에 마음을 조이면서 사탄이 공인할 수 있는 마지막 때까지 이 놀음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사정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 1970.12.27(일) 뜻과 나. 전본부교회.
037-248 여러분은 뜻을 위해서 얼마나 생명을 바칠 각오를 했습니까? 여러분이 임지에 돌아가게 되면 현지의 자기 입장에서 뜻을 위해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원수들이 "뜻을 위한다면 한 번 해 봐라" 하고 시련을 주게 되면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훈련을 해야 됩니다.
깊은 시련이 있더라도, 악어 떼가 입을 벌리는 자리에 있더라도 힘을 다하여 달리는 맹수처럼 뜻을 위해 각오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원수들이 조롱하는 가운데에 있더라도 하나님의 권위를 지키고, 수많은 인간이 찬양하는 하나님의 특권적인 권한을 중심 삼고 하나님의 신의를 세우고 절개를 지켜야 합니다.
사탄이 그런 절개를 시험해 보고자 할 때, 원수들의 총칼에 의해 몸뚱이가 벌집이 되더라도 당당코 뚫고 나가야 합니다. 여기에는 秋毫(터럭 호)추호 (가을철에 털갈이하여 새로 돋아난 짐승의 가는 털.)의 용서도 없습니다. 이미 뜻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기로 맹세한 몸이라면 비난과 비소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 지금까지 선생님은 생명을 다하며 별의별 수난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지금까지의 길이 지옥 같았지만 내가 아직 생명을 다하지 않고 목숨이 남아 있는데 무슨 불평을 하겠느냐 하며 나왔습니다. 아직까지 내 가슴에 붉은 총탄이 들어가지 않았고, 시퍼런 창끝에 찔리지 않았는데 무슨 불평입니까?
제1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생명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 16:26)라는 말씀은 천하보다 귀하고 유일하며, 절대적인 것이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절대적이며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절대자는 그 생명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 천국에 가고 싶겠지만 생명을 바치지 않고서는 절대로 가지 못합니다. 천국에 가 보세요. 생명을 바치지 않은 사람이 천국에 있나 없나. 신앙의 본질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 나오면서 사지에 들어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나는 죽지 않았고, 나를 죽이려 하는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고빗길의 마지막 순간에 들어설 때마다 구해 주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픔을 느끼면서도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결의를 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한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던 것입니다.
2. 그를 장작더미 위에 올려 놓았을 때 아무 반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용서받을 수 있는 희생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 1971.12.22(수) 하나님은 어떻게 복귀 섭리를 하시는가. 워싱턴 D.C.
052-963 이삭이 태어날 때 아브라함은 나이가 100살이나 되었지만, 사랑하는 하나님께 제물로 비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 즉 사탄과 분립된 자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런 아들까지도 바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그의 자식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것을 거절했더라면 복귀 섭리는 어떤 일이 일어났겠어요? 이삭도 그의 아버지가 그를 장작더미 위에 올려 놓았을 때 아무 반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용서받을 수 있는 희생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3. 칼을 대려고 할 때에 이삭은 이미 죽은 몸으로 알았기 때문에 그런 놀음이 벌어진 거예요.
▣ 1985.2.25(토) 부모님 탄신일 말씀. 벨베디아.
- 댄버리에서 특별휴가 나오셔서 하신 말씀.
134-139 아브라함이 칼을 대려고 할 때에 이삭은 이미 죽은 몸으로 알았기 때문에 그런 놀음이 벌어진 거예요. 이삭이 그러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 앞에 제물 되어도 좋다고 반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삭을 통해서 에서와 야곱을 통한 민족적 터전을 닦는 데 공헌한 아버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이삭이 죽을 자리에서 반대했으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아브라함이 제사를 드리는 데 "아버지, 왜 나를 잡아 제사를 드리세요? 양을 잡아 제사드리지." 그랬더라면 아브라함 가정은 나타나지 않았다구요. 이스라엘 선민의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없었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