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10.17(일) 본부교회. 참부모와 중생3
251-213 니고데모가 "커서 어떻게 다시 어머니 배 속에 들어갑니까?" 할 때 "네가 이스라엘의 선생이 돼서 그걸 알지 못하느냐?" 하고 책망한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개념이 중생입니다.
* 사람의 세포가 400억 개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세포와 같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자들이 어떻게 해야 어머니와 하나되느냐 하면 어머니의 심정을 생활에서 체휼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 삼으면 하나님의 슬픈 사정에 자기도 모르게 통곡이 나옵니다. 통곡의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 왜 이러느냐 해서 기도해 보면 무슨 사건이 생긴 걸 알게 되는 거예요. 그것을 체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슬퍼하면 혈육은, 벼리(그물의 위쪽 코를 꿰어 놓은 줄. 잡아당겨 그물을 오므렸다 폈다 한다.)에 달려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체휼하는 것입니다.
쌍둥이가 그렇습니다. 형제가 그렇고, 부자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어디 외국에 가서 불의의 불상사를 당하면 자다가도 소리치고 일어나는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와 같은 체휼적 동화권내에 들어가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어머니와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 배가 평면적으로 있지만 이것이 세계적인 배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가정이 들어가고 수많은 종족이 들어가고 수많은 민족이 들어가고 수많은 국가가 들어가고 천주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 여자들이 가인 아벨을 다 번식했다구요. 가인 아벨을 자기 배 속에 지고 어머니 배 속으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것이 중생의 개념입니다.
* 그래서 참부모님은 절대 필요하다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부모가 필요한 것은 중생하기 위해서입니다.
중생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생명의 인연을, 사랑의 인연을 통해서 다시 이것을 접붙이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세상에 무엇이 없더라도 절대적으로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참부모란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부모가 있어서 다시 잉태해야 되는 것입니다.
잉태하는 데는 가인 아벨을 복중에 품고 있는 거예요. 가정적인 가인 아벨 어머니 그다음에는 종족적 가인 아벨 어머니 그다음에는 민족적 가인 아벨 어머니 그다음에는 국가적 가인 아벨 어머니가 사방으로 하나를 중심 삼고 널려 있는 것입니다. 이게 사방팔방으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몰아넣어 가지고 배 속에서 하나되어 가지고 참부모의 혈육을 먹고 자랐다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아들딸이 안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피살을 빨아 먹고 하나되어서야 아들딸이 태어나지요?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와 완전히 하나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된 입장에서 다시 태어났다는 이런 체휼적 신앙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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