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길을 떠난다는 그런 생각을 절대 가져서는 안 된다. - 8가지.

true2020 2018. 2. 22. 12:59

1. 올라가는 그때를 기뻐만 해서도 안 될 것이요 내려가는 때에는 서러워해서도 안 될 것이다.

2.  밤이 있으면 낮이 있는 것이다.

3. 뜻길을 떠난다는 그런 생각을 절대 가져서는 안 된다.

4. 뜻을 중심 삼고 얼마만큼 오랫동안 가치 있게 지니고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

5. 태어나는 그날부터 죽는 그날까지 행복한 사람은 없는 것이다.

 

▶ 1971.3.21(일) 전본부교회. 흥망의 분기점.

042-245 뜻길을 가는 사람은 아무리 비참한 환경에 떨어졌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것이 자기에게 발전할 수 있는 하나의 자극이 되고 장차 소원의 터전을 넓힐 수 있는 하나의 기반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떠한 슬픔의 고비가 있다 해서 그것이 미래의 뜻을 방지시키고 뜻이 가는 길을 무너뜨리는 동기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 우리가 뜻을 중심 삼고 하루하루의 생활을 두고 보더라도 신념을 스스로 다짐하는 강한 면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입장에 서는 경우가 있음을 느낄 것입니다.

 

여기에서 올라가는 그때를 기뻐만 해서도 안 될 것이요 내려가는 때에는 서러워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려가는 때가 있다면 거기서 내일의 희망을 다짐할 수 있는 하나의 안식 기간으로 이것을 소화하고 흡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생활 이념을 가진다면 아무리 저조한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자신을 더 저조한 자리에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위하여 다짐할 수 있는 하나의 밑거름으로서 하나의 터전으로서 그것을 흡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놀음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밤이 있으면 낮이 있는 것입니다. 밤은 낮을 빛나게 하기 위한 준비의 기간이요 휴식의 기간이요 재차 연마하는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미루어 보게 될 때 수난의 과정에는 굴곡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042-247 그러면 망하지 않는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느 위치에 올라갈 수 있는 자리에 있을 때 내려갈 수도 있다는 것을 망각해 버린다면 내려가는 입장에 서게 되면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기 때문에 내일의 소망을 향해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기틀을 잃어버리는 자리가 됩니다.

 

그런 자리에 서게 되면 거기에는 정지 상태가 벌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정지 상태가 벌어지면 자기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길도 막혀 버리는 것입니다.

 

만일 막혀진 그 자리가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자리가 될 때 그는 거기에서 제거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리 법도 앞에 당연한 이치라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려가는 때가 되어 그 환경에 둘러싸이게 되더라도 낙심할 것이 아니라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그 내면적 환경의 어려움에 부딪칠수록 우리의 내심은 뜻을 집약시켜 핵심적인 기준을 마음에 품고 소신을 가지고 외적 환경을 대하여 밀고 나가는 그런 터전이 남아 있다 할진대는 어느 때라도 그 터전을 중심 삼고 다시 뜻길을 항하여 출발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지 못하고 외로움과 어려움과 시련에 부딪치게 될 때 그 환경적인 여건에 휩쓸려 들어가서 뜻을 망각하고 뜻을 저버리고 지금까지 걸어왔던 뜻 생활의 모든 것을 새로이 비판하면서 포기하는 입장에 서면 거기에서 뜻에 대한 길이 끝을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인들은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망한다'는 관념 혹은 뜻길을 떠난다는 그런 생각을 절대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 누구보다도 먼저 뜻을 알았더라도 먼저 안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뜻을 먼저 안 만큼 그 뜻을 중심 삼고 얼마만큼 오랫동안 가치 있게 지니고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 뜻을 중심 삼고 나가는 데 있어서 자신의 생활에 굴곡이 있다고 하여 내려갈 때는 그 뜻을 저버리고 내려가고, 올라갈 때는 다시 그 뜻을 품고 나가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올라갈 수 있는 때가 되었다 하더라도 내려갈 때에 뜻을 품고 나간 동기가 없으면 그때를 자기의 때로 맞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면 춘하추동, 이 사계절이 돌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봄이 지나가면 여름이 오는 것이요 여름이 지나가면 가을이 오는 것이요 가을이 지나가면 겨울이 오는 것이요 겨울이 지나가면 다시 봄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 생명을 지닌 씨라든가 생명을 지닌 풀이라면 다시 봄을 맞이하게 될 때에 그들은 지나간 봄보다도 크고 굵어진 자태로써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이와 같이 뜻길을 가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을이 되었다 하여 완전히 죽어지는 입장에 서게 되면 그것으로써 끝나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아무리 트다 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시련이라는 것은 인생행로에 있어서, 혹은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행복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태어나는 그날부터 죽는 그날까지 행복한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굴곡이 있다는 것입니다.

 

6. 선조의 죄를 탕감하자.

 

▶ 1964.4.19(일) 대구교회. 고난을 이기고 가야 할 4년 노정.

- 부활절 기념.

 

014-025 혈통의 인연을 가진 선조들과 관계되어 있는 것은 그 후손이 탕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갚아 주겠습니까? 선조들이 지은 죄를 누가 갚아 주겠습니까? 그러니 후손 된 자녀가 탕감해야 됩니다.

 

* 여러분의 선조 중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선한 선조를 갖지 못한 후손으로서 충성을 다하여 성과를 내게 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특별히 주시하는 것입니다.

 

* 지금까지 역사적인 선조의 죄를 이 기간에 전부 탕감하자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생하더라도 뜻길에서 떨어지면 안 됩니다. 죽지 말고 살아남아야 합니다.

 

7. 나는 최대의 비극 배우.

 

▶ 1958.1.3(금) 전본부교회. 삼위기대의 의의.

003-246 6천 년 역사과정에서 뜻길을 걷고 있는 나는 最大의 悲劇 俳優라고 생각하십시오. 이것은 다른 사람이 못하는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남 못 가는 걸음을 걷자 이거예요. 여기에서 사탄은 못 견딘다는 것입니다.

 

8. 구름과 같았던 무리가 많았던 것을 생각할 때에 차라리 그들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 1966.11.12(토) 전본부교회. 제7회 참자녀의 날.

017-084 뜻길을 가다가 환경에 시달리고 생활에 쪼들려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의 갈 길로 돌아서 버리는 사람은 지나가는 나그네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검은 구름이 무서운 폭풍우를 실어다 준다 해도 최후까지 남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걸어온 갈 앞에 소망의 한 초점으로 나타났다가 흘러가는 구름과 같았던 무리가 많았던 것을 생각할 때에 차라리 그들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더욱이 내가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호소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이 돌아설 때는 그 슬픈 마음이 뼛골에 박혀 빼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미워서가 아니라 민족 앞에 돌아가는 피해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에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에 비례하여 그들에 대한 분함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하늘의 명령이 없는 한, 참고 나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가 가정만을 찾으려 하시지 않고 그 가정을 제물 삼아 국가를 찾으려 하고 국가를 제물 삼아 세계를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