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인물

"보험금으로 병원비를 내면 안 된다" - 北谷眞雄

true2020 2018. 2. 21. 17:16

▣ 죽으면 알지만, 그것으로는 늦다. 02 -  北谷眞雄 (키타타니 사다오)

- 2016.6.10 세계가정. 일본어 번역.

 

왼쪽 팔은 어깨에서 切斷합시다

 

사고를 당하신 아버지의 모습은 비참했습니다. 얼굴의 피부는 다 벗겨지고 거기에 수많은 작은 돌들이 박혀 있었습니다. 코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왼팔은 오른쪽으로 뒤집혀 있었고 오른발은 몸안으로 들어와 있었습니다.

 

의사는 어떻게 해도 살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應急處置로 얼굴에 박혀 있는 큰 돌들만을 들어내고 봉합할 뿐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듣고 그날 밤 친척들이 속속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밤이 마지막이다"라는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날 밤을 버텨 냈습니다. 그리고 1주일 뒤에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어머니에게 들어온 靈(신도에서는 선영이나 천사를 하나님이라고 한다)의 말대로 된 것입니다.

 

사고 후의 아버지의 얼굴은  Frankenstein:괴물 이름 (Mary Wollstonecraft Shelley1797~1851 영국 소설가)이었습니다. 오른쪽은 눈은 빠져나와 있고 얼굴에 박혀 빼지 못한 작은 돌들은 꿰맨 실에서 나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상태에 아버지는 조금씩 회복하는 중이었습니다. 비뚤어진 왼쪽 팔에 대해서 의사는 "나을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대로 놔 두면 썩어 생명에 지장이 옵니다. 애써 살아났는데 왼쪽 팔은 어깨에서 切斷합시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수술의 동의서에 인감을 찍도록 전해왔습니다.

 

그러자 어머니에게 하나님이 들어와 어머니를 통해서 "낫는다"고 전해 온 것입니다. 물론 의사는 영이 하는 말로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당연히 의사는 화냈습니다.  Röntgen 뢴트겐(X선, 감마선의 단위)을 찍고 여러 각도로 검토하고 다른 의사와도 상담한 결론에 대해서 의학적으로 전혀 생무지한 어머니가 "낫는다"고 하기에 그럴 만도 합니다.

 

가족이기에 어머니가 사고의 쇼크로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사는 화를 내면서 방에서 나가 버렸습니다. 그러자 영이 또 "지금, 의사는 대기하는 장소까지 갔지만 금방 돌아올거야"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정말로 바로 의사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서류에 도장을 찍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서류는 "팔을 절단하지 않은 원인으로 해서 무슨 일이 생기면 의사를 소송하지 않겠다"고 하는 동의서였습니다. 어머니는 그 서류에 사인을 하고 도장을 찍은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고 직후부터 어머니는 언니의 집 가까이 있는 神道 敎會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는 특별히 신앙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고 괴로울 때 하나님에게 매달리는 것이 이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의 의식이 돌아온 후에도 어머니는 그 교회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매일 하루도 빼지 않고 아침 7시부터 수행을 계속한 것입니다.

 

당시 나에게는 7살 위의 중학생의 형과 나보다 두 살 위의 누나가 있었습니다. 학교에 다니지 않은 것은 나뿐이었습니다. 아버지 간병의 역할이 내게 돌아왔습니다. 나는 유치원을 쉬고 매일 아침 6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아침까지 곁에서 수발을 들던 어머니와 교대하는 것입니다. 

 

5살의 내가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에게 뭔가 이상이 있으면 buzzer를 눌러 간호사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난 하루 종일 병원에 있었는데 언제나 하는 말이 "가만히 있어" 하는 것이었습니다. 5살의 아이였기에 달려 다니고 싶지만 병원이기 때문에 참아야 했습니다. 그것이 너무 힘들었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어머니의 간병 생활을 이러했습니다. 병원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아침 나와 교체交替를 한 뒤 신도의 교회에서 수행을 했습니다. 낮쯤에 병원에 돌아와 "하나님이 들어온 상태로 아버지를 massage(프) 안마를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의사가 절단한다고 한 왼쪽 팔이 일부 손가락은 부자유했지만 나은 것입니다. 오른손은 괜찮았기에 운전도 할 수 있게 되었고 밥도 혼자서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또 몸에 들어와 있던 오른쪽 발은 질질 끌며 걸을 수 있게 되었고 나중에는 종종걸음을 할 수 있게 회복되었습니다.   

 

"보험금으로 병원비를 내면 안 된다"

 

이렇게 죽을지 살지 모르는 중상이었기에 병원에서는 개인실에 있었습니다. 입원 당시에는 어쨌든지 살아 주기만을 바라는 한마음이었습니다만, 약 1개월이 지나고 병원비를 내야 할 때가 오면서 다시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당연 병원 치료비는 막대하였고 정산할 수 있는 금액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우리 집은 오사카에서 작은 상점을 하고 있었지만 유복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사고는 아버지가 타고 있던 오토바이와 덤프트럭의 충돌로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지금부터 56년 전의 일이지만 덤프트럭은 보험에 들어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 보험금으로 입원비를 처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고 하는데 또 어머니에게 영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보험금으로 병원비를 내면 안 된다"고 하는 겁니다. 이유로는 "그렇게 하면 정리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얘기를 하고 그 영은 어머니에게서 떠나버렸습니다. 나에게 돌아온 어머니는 "영이 뭐라고 하더냐?" 고 가족에게 물었습니다. "보험금을 쓰면 안 된다고…"라고 가르쳐 주자 어머니는 "어떻게 그런, 그렇게 얘기해도…" 하며, 茫然自失했습니다.

 

나는 나중에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이 영이 말하는 의미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전에 말했던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라고 말했는데 아버지의 사고에도 원인이 있었던 겁니다.

 

마침 그때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원인은 선조의 죄었습니다. 우리 선조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은, 영계에 있어서도그 恨을 잊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한은 후손인 우리들에게 미쳐 재앙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런 한의 영을 恨靈, 악영이라고 합니다. 

 

그럼 아버지에게 사고를 일으킨 恨靈은 우리 조상으로부터 어떤 피해를 당했을까요?  영이 확실히 가르쳐 준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아마도 돈이 걸려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은 "보험금으로 치료비를 내면 정리가 안 된다"고,  다시 말하면, "땀과 눈물을 흘려 번 돈이 아니면, 그 한의 영을 풀 수 없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에게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보험금을 받지 않는 이상 누군가에게 빌리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친척에게 부탁해도 "그럴 때 쓰려고 하는 보험금인데 어째서 보험금을 받지 않느냐" 하는 말이 고작이었습니다. "영계에서 그렇게 말했다"고 설명해도 누구 하나 믿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보험금을 쓰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영이 들어와 "이 마을에서 제일 좋은 집을 지어 주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너무나 막연해 마을에서 제일 좋은 집을 지어 주겠다는 것이 언제 한다는 것인지, 몇 년 후의 일인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당시 5살이었던 나 조차도 "그런 앞으로의 얘기보다도 지금을 좀 어떻게 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靈이 하는 얘기에 순응하고 있었습니다. 損得으로 말하면 틀림없이 손해입니다. 바보 같다고 여기는 사람이 거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어머니는 손해 보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만약에 어머니가 신앙적으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보험금을 가지고 치료비를 냈다면 지금 내가 이렇게 뜻길에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100일 가까이 입원한 후 퇴원했습니다. 아버지가 보여 준 기적의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은혜를 받고자 집에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낫게 해 준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일심으로 기쁨으로 상담에 응했습니다. 또 원하면 밤에라도 나가서 도울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3년 정도 지난 후에 영이 "집을 교회로 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큰 집은 아니었지만 교회로 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영의 말대로 집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