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유대교

1, 2, 3차 유대-로마 전쟁

true2020 2016. 9. 26. 11:39

▣ 1차 유대 로마 戰爭


* 유대 獨立戰爭 66~73년

: 위대한 전쟁

: 세 번에 걸친 항쟁 중, 첫 번째 전쟁

: 그리스계 로마인과 유대인 사이의 종교적 紛爭에서 시작되었다.

: 티투스가 이끄는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 함락, 聖殿을 불태우고, 유대인 反亂 敗北의 결과로 국가를 잃어버리고, "디아스포라"(그리스어, 흩뿌리거나 퍼트리는 것)가 시작되었다.


* 원인

: 일신교, 同化의 拒否

: 稅金의 暴利

: 이교도 로마인의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으로 지명.

: 39년경 칼리굴라(본이름은 가이우스. 칼리굴라는 "꼬마 장화"라는 뜻의 별명.

로마제국의 제3대 황제, 12.8.31~ 41.1.24, 재위기간 37.3.16~41.1.24) 의 神格化 (제국 전역에 자신의 彫刻像을 聖殿에 세우게 함)


※ 칼리굴라(가이우스)

- 즉위 7개월 만에 고열로 쓰러진 후, 후유증으로 정신 이상이 생겼다.

- 근친상간, 도박, 신격화, 참혹한 검투사 시합, 財政 破綻.

- 41년 1월 근위대장 카시우스 카이레아 등에 의해 아내, 딸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

- 그의 통지기간은 3년 10개월이었다.


* 경위  

- 네로 皇帝 (재위 54~68)의 鎭壓 命令

: 시리아 속주의 총독이자 군단장 케스티우스 갈루스 안티오키아에 駐屯하고 있던 12군단과 유대왕 아그리파 2세의 지원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향했으나 실패. 

: 갈루스의 후임으로 베스파시아누수 임명. 

: 65년 5월 3개 로마 군단 6만 명.

ㄱ. 제 5군단: 도나우 강 연안에 주둔. 발칸반도 출신. 

ㄴ. 제19군단: 시리아 주둔. 소아시아와 그리스 출신. 

ㄷ. 제15군단: 제 5군단과 같은 구성  


- 네로 황제의 죽음으로 유대 전쟁은 1년 반 동안 중단된다.

- 베스파시아누스 로마 황제 (재위 69년7월~79)에 의해  예루살렘 공략 재개되었다.

- 베스파시아누수의 아들 티투스가 지휘하고, 이집트 장관 율리우스 알렉산드로가 도왔다.

- 12군단 추가되고, 아그리파 2세도 직접 참전했다.

- 열심당원의 決死抗戰 가운데 항복을 주장하는 사람은 누구나 암살했다. 로마인의 손이 아니라 유대인의 손에 죽었다.  

- 항복을 권고했지만, 유대인은 듣지 않았다.

- 로마軍은 누구든지 성을 탈출하려 하면, 잡아 십자가형에 처했다. 1만여 명이 성 주위의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되었다.

- 70.8.10 예루살렘 성전이 불에 탔다.

- 城 안에는 어림잡아 270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있었다. 捕虜로 잡힌 유대인은 유대 전쟁 전 기간을 통해 9만 7천 명이었고, 무려 110만 명의 사람이 죽었다.  


- 마사다 抗戰

: 예루살렘 서남쪽 30Km  헤로디온, 사해 동쪽 마카이로스, 서쪽의 마사다의 세 요새에서 항전. 티투스의 3개 군단은 원래의 주둔지로 돌아갔다. 사후 수습을 위해 루실리우스 바수스 파견되어 요새를 점령하였으나 병사하였다, 그 후임으로 폴라비우스 실바가 부임했다. 

: 73년 마사다 요새 陷落함으로써 유대전쟁은 끝났다.  


* 결과

: 율리우스 카이사르 때부터 시작된 유대에 대한 寬容路程에 變化가 왔다. 

: 17세 이상의 남자 포로 일부는 이집트나 각 속주에 보내져 노예가 되었다. 

: 검투사가 되거나, 野獸의 먹이가 되었다. 

: 16세 이하의 남녀는 병사들에게 전리품으로 분배되었다. 

: 예루살렘에만 있던 대제사장 제도도 폐지되고, 70인회도 폐지되었다. 

: 군대가 주둔하지 않았던 예루살렘에 1개 군단 / 2군단? , 약 1만영 명이 병력이 상주하게 되었다.     


▣  2차 키토스 전쟁 115~117


▣ 3차  바르 코크바(아람어로 "별의 아들")의 반란 (132~135)


* 이유

- 130년 하드리아누스의 유대지역 방문해서 3가지 정책을 실시함으로 유대인의 반감을 샀다.

: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Publius Aelius Trajanus Hadrianus, 76년 1월 24일~138년 7월 10일)는, 로마 제국의 제14대 황제(재위: 117년~138년)이다.


1) 예루살렘 북쪽 아일리아 카피톨리나라는 도시를 건설하여, 10군단 상주시킨 것.

2) 유대인에게 割禮를 금한 것

3)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 자리에 로마의 신 유피테르 (Iuppiter, 간혹 Iupiter, 영어로 주피터Jupiter. 로마 신화의 최고의 신,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와 같다) 神殿을 지었다.


* 결과

- 유대인의 거점 요새 50개가 함락.

- 985여 개의 마을이 廢墟가 되었다.

- 사망자는 약 58만 명.

- 많은 유대인이 노예로 팔려갔다.

- 追放

: 예루살렘이 항상 로마제국에 반대하는 항쟁의 진원지가 되기 때문에 하드리아누스는 모든 유대인을 예루살렘에서 追放했고, 다시는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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