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더 생각하자. 1977.6.12(일) 벨베디아.

true2020 2016. 8. 26. 17:23

▶ 한번 더 생각하자. 1977.6.12(일) 벨베디아.

93-298 우리는 세상에서 불행한 사람을 많이 보게 됩니다. 더욱이 감옥 같은 데에 가보면 그러한 참상을 많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어떤 사형수하고 같이 있어 본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뭐냐 하면 자기의 형 집행에 대해서 언제나 고민하는 것이었습니다.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 제일 기뻐하는 시간은 자기를 불러 주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이야말로 제일 희망적인 시간인 것입니다. 그래야 조서를 꾸미든가 사건의 진전이 이루어져 가지고 해결될 수 있는 때가 가까이 오기 때문에 수감되어 있는 모든 죄수들은 자기 이름 부르는 것을 참 鶴首苦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 가운데 한 가지 색다른 사람이 있다 이거예요. 한 가지 그와 반대적인 사람이 있다 이거예요. 그게 누구냐 하면 사형수다 이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그가 이름을 불리우는 날에는 자기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그 사형수를 보게 된다면 언제나 그러한 고민 가운데 싸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마음으로 언제나 생각하는 것은 뭐냐 하면 "내가 한번 더 요랬으면 이렇게 안 되었을 걸…"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 마음 가운데는 "아, 내가 그 일을 요렇게 한번만 더 생각했더랬으면···. 그걸 안 했으면 좋았는데 ··· . 이 죽음길을 어떻게 피해 가느냐" 하는 생각밖에 없다 이거예요. 

 

그런데 한번 더 생각했으면 하는 것은 어려운 것도 아니라구요. 어려운 것도 아니다 이거예요. 한번 조금만 더 생각했으면 그 모든 문제에 걸리지 않았을 것인데 생각을 잘 못했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저끄러졌다 이거예요.


불행 길, 不幸한 길의 出發이라는 것은 큰 外部의 事件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그러한 때 자기가 사건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러한 일을 당했을 때에 한번 더 생각하는 데는, 한번 더 생각해야 할 것은 자기를 중심 삼고 생각했다가는 그 고개를 넘기 힘들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면 그 길을 얼마든지 넘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겠느냐 이거예요.

 

자기를 중심 삼고 생각하고 자기를 중심 삼고 行動하고 자기를 중심 삼고 참지 못하는 데서 모든 不祥事가 생긴다'하는 것을 절절히 느껴볼 수 있었더라 이거예요. 자기를 중심 삼고 행동하고 참지 못하는 데서부터 모든 불상사가 생긴다 이거예요.

 

그것이 만약에 자기를 중심 삼고 생각지 않고 공적인 면의 딴 사람을 중심 삼고 생각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으면 그러한 어려운 문제는 완전히 피할 수 있다 이거예요. 

 

* 학교에 가나 직장에 가나 혹은 어떠한 동무 지간에 있어서나 가정생활에 있어서나 모든 생활에 있어서 이러한 교차로는 언제나 상봉하게 마련이다 이거예요. 

 

* 한번 더 생각하자! 중대한 결정을 하면 할수록 반드시 그러한 처지에 서지 않고는 일대의 비운이 찾아올 수 있는 일이 번번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 삼은 생각을 하는 것이 원수였더라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구요. 

 

* "한번 더 생각하자"는 문제도 전부 다 "나"라는 것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나를 버리고 하늘을 위해 산다면 하나님의 심판대는 필요 없다구요. 하나님의 왕궁도, 어디든지 ··· , 무서운 데가 없다구요. 하나님이고 무엇이고 무서운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 자, 그럼 우리 역사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자구요. 타락이 왜 생겨났느냐? 타락이 어디서부터 생겼어요? 나를 중심 삼고 생각하는 데서, 나에게서부터 생긴 것입니다. 천사장도 자기를 중심 삼은 데서 ··· , 자기를 중심한 사람 둘이 사랑했으니 둘 다 망하게 됐다 이거예요. 해와하고 천사장, 둘 다 망했다구요.   

 

* 역사적으로 보면 아담 해와도 자기 생각하다 그렇게 됐다구요. 그렇지요? 그리고 가인 아벨도 볼 때 누가 뜻을 망쳤느냐 이거예요. 가인이라구요. 가인이 자기를 중심 삼았기 때문이에요.

 

* 아담 해와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천사장도 마찬가지예요. 한번 더 공적인 생각을 했으면 ···.  그렇지요?

 

* 자, 또 아브라함을 보라구요. 제물을 드리는 데 있어서 소와 양은 전부 다 쪼개고 비둘기는 안 쪼갰는데, 왜 안 쪼갰느냐 이거예요.  한번 더 공적인 생각을 했던들 ··· .  "이건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요, 인류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하고 한번 더 생각했으면 비둘기를 쪼개야 된다는 걸 알았을 것이고 그랬으면 역사에 汚點을 남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 그다음엔 모세도 그렇다구요. 반석을 한 번 쳐야 할 것을 두 번 쳤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다 쓰러졌던 것입니다. 자기 혈기 때문에 쳤다 이거예요. 또 반석을 깨뜨렸지요? 그저 자기 잘못으로 ··· .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이 전부 다 광야에서 쓰러진 거예요. 

 

* 세례 요한. 

* 가롯 유다. 

 

*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이 한번 더 생각해 보고자 하고 공적인 눈으로 생각해 보고자 하는 생각을 가졌더라면 이러한 실수를 방지해서 역사는 이미 수천 년 전에 다 달라졌을 것입니다. 알겠어요? 역사가 얼마나 달라졌겠는가를?  

 

*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싸우고 있는 거예요. 싸우고 있는 시간이고 그렇게 싸워 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선 거예요. 누구하고 싸우느냐 이거예요? 나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나하고 ··· . 딴 것이 아니라구요. 선생님도 아니요, 친구도 아니요, 아무도 아니에요.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은 입입니다

 

* 그다음에는 눈을 주의해야 되겠다구요. 그다음에는 귀를 주의해야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자기를 위해 하는 말은 여러분은 듣지 말라구요. 

 

*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하고는 말도 하지 말고 자기를 위한 변명도 하지 말라 이거예요. 이게 제일 防禦策이다 이거예요. 자기의 스승이 될 수 있는 사람, 자기보다 더 위하는 사람을 찾아가라는 거예요. 

 

* 하늘 앞에 가서 기도해도 "야, 네가 참아라" 하늘이 위로하는 말이 "너는 너를 죽여야 된다, 참아라, 그래야 복 받는 거다" 번번이 그렇게 대답해 준다구요. 참아야 복 받는다 이거예요.

 

* "참아라, 참아라" 한다구요. 번번이 참으라고 한다구요. 그게 공적인 길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동양에서 참는다는 말은 마음에다 칼을 들이대더라도 참는다는 뜻이에요. 마음에다 칼을 꽂으면 얼마나 아프냐 이거예요. 천 번 참는 사람은 천 번 싸움에 이길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구요.  

 

* 한번 더 생각하고, 한번 더 생각하여 행동하고 한번 더 생각하고 참아야 된다구요. 행동도 한번 더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참기 놀음하는 거예요.

 

忍耐라는 말은 듣기 싫은 말이지만 가장 귀한 말이라는 거예요. 그럴 적마다 한 가지 생각하라구요. 힘들지만 한 가지 생각하라구요. 참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내가 참음으로 말미암아 뭐냐 되느냐?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복을 내가 전부 다 인계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 원수에게 분하면 분할수록 참으면 큰 복을 받을 수 있다 이거예요. 그게 위안이에요.

 

* 그 복을 내가 갖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