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1.7.11(일) 전본부교회. 개척자.
045-302 현실과 미래를 비교해 가지고 현실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보다도 현실의 가치를 정해 가지고 미래의 가치를 추구하기에 투신을 하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진대는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하더라도 그에게는 패자의 서러움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설령 당장에는 자기 일신이 쓰러지는 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쓰러지는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쓰러짐이 도리어 새로운 재출발을 촉구시키는 동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체험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선 사람이 아니고는 개척자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개척자는 현실에 국한된 그런 가치를 다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을 초월하여 미래의 가치를 다짐할 수 있는 신념과 우주관과 인생관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즉 현실의 생활권내에서 감미로운 그 무엇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현실을 터전으로 하여 내일의 가치를 심어 놓기 위한 싸움의 길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해 나가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개척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 과정을 통하여 혹은 시대적 현상이나 우리 생활주변의 사정을 통하여 미루어 볼 때 이것은 당연한 사실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045-304 수난길을 감수하고 나가야 할 개척자의 사명을 짊어지고 나가는 데에 있어서 자기는 이만큼의 수난을 바라보고 있는데 일시에 큰 수난이 몰아쳤다고 합시다.
여기에서 "어찌하여 내 입장과는 상극적인 입장의 수난이 나에게 부딪쳐 오느냐"라고 하면서 불평불만을 하는 사람은 아무리 강한 신념을 가진 개척자라고 자처하더라도 거기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045-307 한 동네를 두고 볼 때에도 그 동네에서 어떤 집은 흥하고 어떤 집은 망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흥하는 집을 보면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하여 아이들까지도 미래의 의욕에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수난에 부대끼는 그런 환경에서도 그 수난길을 극복하겠다는 희망에 흘러넘치게 되면 그 가정은 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서 있던 터전에서 희망이 사라져 버리고 미래의 소망이 사라져 버리고 현실적 자극과 감정마저 상실하여 스스로 자신들을 수습하지 못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그 집은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지 말라고 해도 망하는 것입니다.
* 흥하는 가정을 보면 그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일을 하다가 지치면 그 아들이 이어받아서 하고 또다시 아들이 지치면 딸과 어머니가 이어받아서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 한 가정이 그렇듯이 한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나라에 부딪쳐 오는 시련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시련아, 와라! 우리는 기필코 너를 넘어 내일의 세계에 있어서 새로운 희망의 천국을 소망의 나라를 창건할 것이다."라고 다짐하면서 나가야 합니다.
045-309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개척자는 자기가 당하는 그 일에 관심이 없어 가지고는 그 일을 완전히 정복할 수 없습니다.
개척자는 신념을 가지고 눈앞에 나타나는 그 일이 처음이요 부딪치는 것도 처음 부딪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일에 대해서 백 번 천 번 주의하는 마음으로 안팎을 헤아리고 그것을 연구하고 분석 비판해서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되겠다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그 어떤 환경을 빨리 해결해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쉬운 길을 거쳐서 그 일을 감당하겠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은 아예 개척자가 될 수 없습니다. 개척자의 반열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개척자라는 것은 그 이름 자체로부터, 움직이는 그 실체로부터 남아진 생애로부터 가려가야 할 역사적 운명이 전부 비참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안식의 터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역적으로 천국이 이루어질 때까지 또한 그 분야가 한계선에 도달할 때까지는 미지의 분야와 미급한 분야를 타개할 수 있는 개척자의 입장에 서서 내일의 소망에 불탈 수 있는 현실적 자아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현실의 부대낌 가운데에서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니라 남아져서 상속의 인연을 넓힐 수 있는 터전을 가꾸어 가야만 개척자로서 소망하던 승리의 때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지 그러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척자가 가야 할 길은 언제나 모험입니다. 언제나 수난길이 같이하는 것입니다.
그 모험이라는 것이 자기 환경의 어떤 사건을 중심 삼은 것이 아니라 전후좌우에서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에 부대끼는 그런 모험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단 하나의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재간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노력과 투쟁밖에 없습니다.
045-311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개척자가 가는 길에는 언제나 모험이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라도 까딱 잘못 행동하게 되면 그 인격이 일시에 파탄되어 버립니다. 그렇지만 일시에 파탄될 수 있는 행동도 단행할 수 있는 자신을 가져야 합니다.
*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위신이나 인격이나 체면은 문제가 아닙니다. 현실에서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그 하나의 행동을 현실 전체가 받고 있는 것보다 크고, 보다 가치적인 내용으로, 보다 귀한으로 높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개척자로서의 상속을 미래에 남겨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045-313 그렇기 때문에 개척자는 항상 자기 생명을 위험의 첨단에 내세우는 것은 물론이지만 자기의 인생관이나 우주관 전체를 보따리 싸서 걸어 놓고 Yes냐 NO냐 하는 이자택일을 결정지어야 하는 순간에 있는 것입니다.
* 개척자가 가는 길은 언제나 모험의 길입니다. 그 모험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갖추어 온 인격기준을 중심 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 가서든지 미래의 기준을 중심 삼아 가지고 보다 높은 가치의 내용을 추구해 나가는 길이지 현재의 입장에서의 가치를 보고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그러면 보다 가치 있는 개척자는 어떤 사람이냐? 현실에서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서 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현실보다도 미래에 무한한 가치를 두고 거기에 전심을 쏟고 거기에 생명을 걸어 놓고 무한히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길이 있어도 그것을 응당한 을로서 받아들이기를 결의한 사람들만이 개척자로서 역사의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 자격자입니다.
현실 기준과 더불어 미래를 남기겠다는 사람은 개척자가 될 수 없습니다. 개척자는 언제나 현실을 부정하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걸어 나온 길이 그러하며 앞으로도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그러할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 선생이라는 사람이 세계적인 개척자의 사명을 감당할 자신이 있느냐 할 때 나는 그럴 자신이 있습니다. 모험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통일교회를 사랑하고 이끌고 가야 할 책임이 내게 있지만 이것을 미워하고 저버리고서 더 빠른 길이 있다면 미워하고 저버릴 수 있는 그런 놀음도 해야 됩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안 되게 될 때는 무자비하게 끊어야 되는 것입니다.
045-315 오늘날의 통일교회는 개척의 교회입니다. 세상의 외적인 그 무엇을 개척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인들은 황무지와 같은 정신세계의 개척자요 선구자입니다.
045-316 따라가는 사람은 개척자가 아닙니다. 개척자라는 것은 선두에 선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이어받아 가지고 숭상하면서 가는 사람은 개척자가 아닙니다. 그렇지요? 역사가 없는 자리에서 역사를 창건해 나가는 사람이 개척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울 수 있는 동기를 지니고 간다고 하는 사람은 개척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따라가는 사람이요 본받고 가는 사람입니다.
* 개척자는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방향을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 자체가 역사요 방향입니다.
자기가 그릇된 역사의 인연에 결부되게 되면 그 자신은 자연적으로 파탄되는 것이요 방향이 잘못되어도 그 자신은 산산조각이 나서 그 생명의 밑바닥도 건질 수 없을 만큼 파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척자에게 신앙길이 있다면 그 신앙길은 절대적인 신앙길일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살길을 찾기 위해 검불도 구원의 줄로 잡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개척자에게는 역사도 없고 무엇을 본받을 것도 없습니다. 자기 자체가 역사요 실체이며 자기 자체가 승패의 결정을 마련해야 할 입장이니 얼마나 심각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개척자에게는 그런 길이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 선생이라는 사람은 이제 그만큼 했으면 세상적으로 볼 때 성공한 사람이라고 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해야 할 보다 높은 차원의 일이 있다는 거예요.
과거와 현재에 개척의 사명을 다 했으면 미래에도 남아질 수 있는 자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개척자의 권위와 그 가치를 심어 놓고 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니냐는 거에요. 심어 놓으려면 개척해 가지고 씨를 뿌려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045-318 여러분은 개척지입니다.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거예요. 밥을 먹어도 다른 것입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밥을 빨리 먹어?" 하겠지만 그 사정은 누구도 모르는 거예요.
개척자는 언제든지 바쁩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천성을 그렇게 타고났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045-318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개척자가 가는 길은 모험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인내로써 극복을 해야 될 뿐만 아니라 투쟁을 해야 됩니다.
거기에는 어떤 참고자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숱한 극복의 환경을 거쳐 가지고 틀림없는 결과가 나올 때 그러한 것을 재료로 삼아야 역사적인 결과가 남아지는 것입니다.
045-321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문 선생은 어떤 사람이냐? 선생님은 지금도 개척자의 사명을 다해야 되겠다는 소신을 가지고 변함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생님은 변함없는 생활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망성이 있는 거예요.
045-329 실패도 많이 해 봐야 됩니다. 실패를 해 보는 것도 개척입니다.
045-333 여러분은 극복을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개척입니다. 알겠어요? 개척자의 소망은 오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일에 있습니다. 알겠어요?
그 내일은 어떠한 내일이냐? 그것은 내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체가 영원히 보장될 수 있는 내일입니다. 그 내일은 하나님께도 필요한 것이요 민족에게도 필요한 것이요 선생님에게도 필요한 것이요 여러분에게도 필요한 것이요 여러분의 후손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045-342 세상이 못하는 일을 내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못하는 일을 통일교회가 해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것은 왜냐? 통일교회는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여 새로운 천국을 창건해야 할 개척자의 사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척자는 인내심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표준도 없는 것이요 본받을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바로 역사요 본받게 할 수 있는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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