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의 원칙 3가지 - 칸트
1) 어떤 일을 할 것
2)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3)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
1. 기뻐하라.
▣ 1996.2.11(일) 브라질 새 소망 농장.
276-132 일하면서 기뻐해야 돼요. 노래를 하고 기뻐해야 됩니다. 아무리 감옥에 들어가 사형장에 나가도 기뻐하면서 가야 기쁨의 천국이 연결되는 거예요.
누구든 행복의 센터가 되기를 원합니다. 행복은 보다 투입하고 희생한 자리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부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침에 비가 많이 오더라도 "오늘 참 행복하다!"하고 점심때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이거 나한테 가장 행복한 일이다"하고 그래야 그 행복이 나를 덮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의 집, 행복의 환경, 행복의 세계가 온다는 것입니다. 불행한 자리에는 하나님이 찾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가장 행복한 곳에 하나님이 찾아와 머무는 거라구요.
여러분 행복해요 불행해요? 여러분 눈은 어때요? 행복한 눈이에요? 행복한 코, 행복한 입, 행복한 귀, 행복한 몸 마음이 되어 있느냐 이거예요. 행복한 사랑의 기관이 되어 있느냐? 행복이 가득한 곳에 모든 힘도 넘치는 것입니다. 그곳이 완성한 자리예요. 거기에 하나님이 찾아오는 거라구요.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2. 행복이라는 것은 자기에게 달린 것이다.
▣ 1992.11.13(금) 한남동. 참사랑의 세계.
- 세계평화여성연합 베를린 대회 때 어머님과 통화 후 2세 및 젊은 목회자에게 말씀.
237-110 사람이 행복한 게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행복은 자기에게 달린 것입니다. 불행한 것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 그렇지만 불행한 과정을 거치면서도 승리의 실적을 남기면 행복해질 수 있다구요.
3. 행복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가져야 된다.
1) 하나님도 혼자는 외롭다.
▣ 1971.9.129(일) 통일의 요인과 방안. 전본부교회.
048-146 그러므로 행복이라는 명사는 혼자 있어 가지고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능치 못함이 없는 절대자라 하더라도 혼자 있으면 외로운 것입니다. 혼자서 웃고 혼자서 좋아하는 사람은 미친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절대자라 하더라도 그분도 상대될 수 있는 어떤 존재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뻐한다는 것은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기뻐하고 좋아한다는 말은 혼자 있어 가지고 되어지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선하다 하는 것도 혼자 있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환경과 관계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성립되는 것입니다. 악하다 하는 것도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환경과 관계를 맺어서 그 맺은 관계의 결과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행복은 반드시 한 가정을 중심 삼고 행복된 사회 행복된 국가 행복된 세계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틀어서 이상적인 세계라는 말로 우리는 대변하는 것입니다.
* 그러면 행복의 기준이라는 것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겠느냐? 이것은 돈도 아닙니다. 권력도 아닙니다. 지식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생명이 아니면 사랑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 1978.3.19.(일) 하나님의 임재와 행로. 벨베디아.
097-239 사람은 어느 누구나 다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행복 가운데에서 즐거워하기를 바란다구요. 행복하기 위해서는, 기쁘기 위해서는 혼자 가지고는 안 됩니다. 혼자 가지고는 안 돼요. 행복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좋은 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행복하신 분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하나님 혼자 행복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결국은 하나님도 상대가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기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은 흥분적인 기쁨을 바라고 있습니다. 자극적인 기쁨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은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마찬가지인 동시에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2) 이 우주의 가장 귀한 진리는 남자와 여자.
▣ 1993.10.12(화) 제주국제연수원. 양심과 통일.
- 2차 일본 여성수련.
250-095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뭐냐? 남자에게 있어서 여자가 없는데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나는 모릅니다. 선생님은 모릅니다. 그래요?
여자는 절대 남자를 필요로 하고 남자는 절대 여자를 필요로 합니다. 여자의 세계에서 자기에게 이 우주의 제일 귀중한 진리는 뭐냐 하면 남자입니다. 남자 이상의 진리는 없습니다. 남자 앞에 아무리 많은 것이 있더라도 최대의 가치를 가진 진리체는 뭐냐? 여자입니다. 사랑하는 여자, 부인입니다. 그거 맞아요 안 맞아요? 이것을 확실히 정리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4. 통일.
1) 부부 사이에 말 한마디 잘못하면 하루 종일 마음이 자유스러워요?
▣ 1993.2.28(일) 구세주와 성약시대. 세계선교본부.
- 재미교포.
245-019 여러분이 부부생활을 하면서 아침에 부부 사이에 말 한마디 잘못하면 하루 종일 마음이 자유스러워요? 해방이 되어 있어요? 회사에 가도 전부가 귀찮습니다. 평화가 있어요? 행복이 있어요? 다 떠나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근본으로 돌아가 가지고 자유와 평화와 해방과 행복은 반드시 통일된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 자유라는 것은 통일된 기반 위에서만 형성됩니다. 그 자리에 서 있어야 그가 바라는 자유와 행복과 희망이 거기에 머물 수 있지 투쟁 개념이 잇는 곳에는 자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내 자신을 돌아봅시다. 제일 문제가 내 자신입니다. 무슨 자기 집안의 문제가 어떻고 남편 문제가 어떻고 하지만 결국 문제는 나 하나입니다. 나 ㅠㅏ나. 내 자신의 몸과 마음이 언제 통일을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2) 행복의 터전이나 불행의 터전이 어디에서 싹트느냐?
▣ 1969.5.12(월) 부산교회. 축복가정의 사명.
- 제2차 세계 순회 귀국 후 전국 순회.
159-172 여러분들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에요? (행복입니다.) 행복. 사랑,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거 다 통해요. 행복도 좋은 거요 사랑도 좋은 거예요. 그렇지만 행복이 어디에? 행복은 어디서부터, 사랑은 어디서부터? 이것이 상대적 관계를 떠나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볼 때에 행복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고 외짝 사랑, 외짝 행복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랑이라는 명사는 홀로 성립되는 말이 아닙니다. 이건 반드시 상대적 관계에서 성립되는 말이기 때문에 상대적인 거예요. 행복도 그렇다는 거예요. 행복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159-172 더더욱이나 지금 청소년 윤리 문제를 중심 삼고 볼 때 부모를 떠나 사회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덞은 층들이 어떻게 되어서 그런 물의를 일으키게 되었느냐, 그 동기가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을 찾아보게 될 때 동기가 그 자신에게 있는 것보다도 상대적 관계에 있는데 그 관계가 어디냐 하면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어머니 아버지로 말미암아 혹은 형제지간의 관계로 말미암아 이런 관계에서 불평불만이 혹은 반발심이 싹트기 시작해서 그것이 노골화되어 가지고 결국은 이것이 전 세계적인 청소년 윤리 문제를 일으키는 동기가 된 것입니다. 그 동기가 대부분 가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 행복의 터전이나 불행의 터전이 어디에서 싹트느냐? 물론 개인에서도 그럴 수 있지만 상대적 관계에 있어서 불행의 요건이 깃들기 쉬운 것입니다. 그 터전이 어디냐 하면 가정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사회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문제는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회에서 자기에게 상심되는 불행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가정에 들어오면 그 불행한 사실에 대해 위로해 줄 수 있고 이것을 극복시켜 줄 수 있는 사랑이 그 가정에 깃들어 있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이 안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회에 있어서 행복하다 하더라도 가정에 그 행복의 터전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가정에 들어가면 불행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가정이란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입니다.
159-176 가정에서 불행한 타령을 하는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 암만 행복을 부르짖었댔자 행복할 수 없는 거예요. 행복이란 요건은, 행복이란 요건은 그렇습니다. 행복이란 여건은 혼자 안 되는 거예요. 심정 문제를 떠난 행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 사람의 행복이라든가 이상이라든가 유토피아라든가 그 어떤 모든 것을 그린다 하더라도 그 기점에 있어서 사랑이란 문제를 떠나면 이것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거예요. 행복할 수 없다는 거예요.
3) 참다운 행복은 영원히 변할 수 없는 부부를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1982.10.14(목)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
- 6000가정 축복식 주례사.
120-173 여러분은 전 생애를 통하여 세 가지 사항을 특별히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첫째 부부간의 영원한 결합입니다. 여러분의 결혼은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가 아니라 영원에 이르기까지입니다.
참다운 행복은 영원히 변할 수 없는 부부를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하고 하나님을 인간 세계에 모시어 들이는 사명을 수행해야 됩니다.
둘째 가정적 사랑의 전통을 확립해야 되겠습니다. 이상적인 결혼을 한 다음에는 공적인 약속을 지키고 자녀를 도덕적으로 훌륭하게 양육하는 것이 여러분의 責任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책임분담과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온갖 정성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만 특히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데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되겠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이상 세계를 건설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되겠습니다. 천국은 만민이 서로 믿고 사랑으로 결합되는 심정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공허와 빈곤과 고통이 있는 한 참된 천국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찬 조화로운 세계를 이루어 여러분들의 자녀와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세계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이상 세 가지는 우리들이 성취해야 할 과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책임진 모든 것을 축복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인 지상 천국을 이루는 데 필요한 지혜와 능력을 주시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
4) 언제나 사랑을 받고 싶을 때 받을 수 있고 주고 싶은 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 1981.3.15(일) 미국. 심정권에 대한 체휼.
112-020 불행은 무엇이냐? 사랑을 받으래야 받을 수 없고 줄래야 줄 수 없는 것이 불행입니다. 행복은 무엇이냐? 언제나 사랑을 받고 싶을 때 받을 수 있고 주고 싶은 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게 행복이에요.
인간이 만약에 타락하지 않았으면 그것은 자동적으로 될 것이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작동되지 않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고장이 났으니 이것을 다시 수리해야 된다 이거예요.
5) 남편이 자신을 이해해 주는 그 이상의 행복은 없습니다.
▣ 1991.11.7(목) 한남동. 심신 일체와 모자 협조.
- 여성연합.
222-333 그러나 한 가지 행복이 있다면 좋은 남편을 만나 결혼한 것입니다. 남편이 자신을 이해해 주는 그 이상의 행복은 없습니다. 어차피 이 타락 세계는 부부가 서로 싸우면서 끝에 가서는 망하는 길입니다. 그렇게 보면 여러분들은 축복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6) 자유와 평화와 행복은 몸과 마음이 통일된 기반 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 1992.12.20(일) 본부교회. 최후의 경계선.
241-112 남편이 아내를 대할 때도 몸뚱이를 가지고 대하느냐 마음을 가지고 대하느냐 이거예요. 아내들이 제일 슬퍼하고 싫어하는 것이 뭐냐 하면 남편이 두 마음을 가지고 몸뚱이와 마음이 다르게 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죽을 지경이라는 거예요. 거기에서 근본이 파탄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통일이 안 되게 되면 악마가 지배하게 되는 거예요.
자유와 평화와 행복은 통일된 기반 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안 되는 거예요. 몸 마음이 싸우는 데 자유가 있어요?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몸 마음이 싸우는 데 행복이 있을 수 있어요?
행복이라는 말이 혼자서 하는 말이 아니라구요. 상대적인 관계, 환경을 중심 삼고 하는 말입니다. 통일이 없으면 거기에는 자유가 없고 행복이 없고 평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5. 같이 좋아하고 같이 사는 데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 1974.8.4(일) 현재의 사명. 벨베디아.
073-086 행복은 뭐냐 하면 같이 좋아하고 같이 사는 데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가 좋아하면 어머니도 좋아하고 자식도 좋아하는 거라구요. 아버지만 좋아하고 어머니가 싫어하고 자식이 싫아하면 그건 행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아버지가 갖고 있는 것을 아내도 자기가 가진 것 같이, 아들딸도 자기들이 가진 것 같이 좋아하는 그런 가정인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6. 나를 사랑하는 형제, 남편(아내) 자녀를 가진 것을 자랑하는 사람이다.
▣ 1976.1.25(일) 참된 자녀로서 아버지 앞에 돌아가겠나이다. 미국.
082-199 언제나 행복한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형제를 가진 걸 자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남편, 아내를 가진 걸 자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자녀를 가진 걸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3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7. 행복은 위하는 세계에 있다.
▣ 1977.2.13(일) 주체와 대상으로 인한 이상 세계. 벨베디아.
091-193 사랑은 상대가 없으면 안 됩니다. 상대가 없으면 사랑도 없고 다 없다구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희망과 이상과 사랑과 행복은 나에게서 온다, 이게 아니라구요. 그것은 나에게서부터 있다, 그게 아니라구요. 그것은 상대로부터 있고 상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걸 받으려면 내가 겸손해야 된다 이거예요. 그거 왜 그러냐? 그렇게 함으로 모든 것이 완전히 올 수 있다는 거예요. 완전히 겸손하면 완전히 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 1990.11.1(목) 벨베디아. 심정의 조류.
207-089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위하는 세계에 있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하나님이 참사랑을 위해서 사람을 만들기 시작할 때 위하고 위하고 또 또 자신을 100% 투입하고 투입하면서 잊어버리는 역사를 해 왔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거기에는 무한한 생명이 연결될 수 있지만 이것은 자기를 위하라고 하기 때문에 대번에 끝장이 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8. 귀한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 1990.2.21(수) 참된 통일과 하나의 세계. 선문대학교.
199-326 행복은 뭐냐? 귀한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돈 가지고 뭘 해요? 돈을 뼛골이 녹아지도록 벌었으면 그것으로 사랑하는 아내라든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서, 이들이 불쌍하게 살았으면 이들의 해원 성사를 위해서 다 채워 주고 남음이 있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남은 돈은 동네를 위해 써야 됩니다.
9. 幸은 辛い라고 하는 말
- 어려움을 극복한 다음에 발견하는 것이 귀한 가치가 있다.
▣ 1993.3.23(화) 미국 세계선교본부. 회개와 전진.
- 재 미국 축복가정 일본 여성. 일본어 번역.
246-111 행복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행복이라고 할 때 幸은 辛い라고 하는 말이지요? 양이 흙을 덮어쓰고 있어요. 흙, 양이 흙을 덮어쓰고 있으니까 행복이에요 불행이에요? 양이 흙을 덮어쓰고 있기 때문에 辛い(つらい)잖아요?
* 행복은 그렇게 달콤한 것이 아닙니다. 힘들고 심각한 과정을 통과했을 때 幸い(さいわい)라고 하는 것이 가능한 거라구요. 그럴 때 자기 나름대로 "이야, 대단하다, 이거 귀한 거구만!" 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거예요. 어려운 것을 극복한 다음에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 귀한 가치가 있는 거라구요.
10. 사랑이 없는 곳에는 희망도 목적도 행복도 있을 수 없다.
▣ 1970.2.26(목) 화동의 중심체. 구리시 수택리 통일산업.
- 제1회 협회 직원 간부 수련회.
029-131 사랑이 없는 곳에는 희망도 없고 목적도 없고 행복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1975.1.26(일) 축복. 전본부교회.
076-047 이 우주의 중심은 뭐냐? 이 우주의 중심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통해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사랑을 통해서 주체 대상의 주관권이 벌어집니다. 질서가 벌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없는 곳에는 평화도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데는 행복도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기쁨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서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헬렌 켈러
희망은 인간을 성공으로 인도하는 신앙이다. 희망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 행복의 조건
* 하버드 대학 인간 성장보고서 "그들은 어떻게 오래도록 행복했을까?" / 조지 베일런트 교수
- 1930년대 말에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한 2학년생 268명의 삶을 72년간 추적하며 행복은 사람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행복의 조건 7가지를 50대 이전에 얼마나 갖추느냐에 달려 있었다는 것이었다.
또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이라는 것이었다. 이 보고서는 끊임없이 배우고 유머를 즐기며 친구를 사귄다면 그리고 담배를 끊고 술을 줄이는 동시에 일찍 귀가해 가족들 얼굴을 한 번 더 본다면 그 사람은 끊임없이 성장하며 행복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 사람은 어디서 행복을 느낄까? (타파크로스가 약 95만 6천 명을 분석한 결과)
1. 대인관계 55%
2. 건강 22%
3. 일상 15%
4. 돈 8%
▶ 원리강론 총서 1
인간은 누구나 불행을 물리치고 행복을 찾아 이루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개인의 사소한 일로부터 역사를 좌우하는 큰 일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은 결국 하나 같이 보다 행복해지려는 삶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면 행복은 어떻게 될 때 오게 되는 것인가?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욕망이 이루어질 때 행복을 느끼게 된다.
▣ 1969.11.30(일) 신앙자의 각오. 전본부교회.
027-093 오늘날 우리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생사문제나 행 불행의 문제는 자유로이 가려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비참하게 최후를 마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그 운명 길이라는 것은 자기 스스로 해결 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행복이라든가 불행이라든가 혹은 생사 등의 전체적인 문제는 물론 인간을 중심 삼고 벌어지고 있지만 인간 자체가 그 모든 문제의 해결 요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027-099 하나님은 우리를 불행의 길로 안내하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최대의 행복의 길로 안내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지백체 가운데 어느 한 부분이라도 괴로운 자리로 가고 싶어 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 표준국어대사전.
- 복된 좋은 운수
-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11. 행복이란?
1) 주체와 대상 관계가 하나되는 자리.
▣ 1972.5.14(일) 하나님과 우리 인간. 구리시 교문동 통일동산.
- 서울지구 합동 야외 예배.
056-140 우리 인간이 제일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인간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행복은 어떠한 것이 행복이냐? 혼자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 행복이야 뭐 나 혼자 있으면 행복하지" 이러겠지만 행복이라는 명사 자체가 자기 홀로 행복하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어떠한 남자가 있으면 그 남자 앞에 반드시 상대적 존재가 있어야 행복하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여자면 여자 앞에, 남자면 남자 앞에 주체와 대상 관계가 하나되는 자리를 기반으로 하여 행복을 추구하려고 하지 그 자리를 떠나 가지고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자리를 떠나 가지고 행복을 추구한다고 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 남자는 100년 이내에, 1세기 이내에 망해 버리고 맙니다. 끝장을 보고 마는 것입니다.
행복을 꿈을 꾸되 반드시 주체와 대상 관계를 중심 삼아야 합니다. 남자가 있으면 남자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어야 합니다. 또 여자가 있으면 남자가 있어야 합니다.
주체 대상 관계가 완전히 하나되는 기반을 통하여 가지고야 여기에 행복이 나오고 이상이 나오고 발전이 나오는 것이지 이 터전을 갖추지 않고는 무슨 행복이니 이상이니 발전이니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은 어디서 나오느냐? 행복은 반드시 둘이 하나되는 데서 형성됩니다. 그건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그러면 둘이 하나되는 데 있어서 둘을 하나되게 하는 그것이 무엇이냐 할 때 이것은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둘을 하나 만들 수 있는 그 힘이 무엇이냐? 이것이 사랑입니다.
▣ 1970.2.15(일) 행복의 원점. 전본부교회.
028-338 남편이 행복하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아내를 가졌다는 뜻이요 부모가 행복하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자녀를 가졌다는 뜻이다. 왜냐 하면 완전히 주면 완전히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사랑을 주고 자녀에게 사랑을 줄 때에는 그것이 그들에게서만 머물게 줄 것이 아니라 세계에까지 미칠 수 있게 주어야 한다.
* 행복에는 영원할 수 있는 요인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하나님도 무한히 줄 수 있는 상대가 있어야 행복하다.
2) 남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내가 행복한 것이 행복이다.
▣ 1988.3.1(화). 씨가 되는 행복. 본부교회.
174-234 남을 못살게 하고 자기만 잘살고 자기만 행복하다고 그것이 행복이에요? 남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내가 행복한 것이 행복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행복이라는 거예요. 전통적인 행복이란 개념이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벌써 행복이란 자기중심 삼은 것이 아니에요.
3)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고 하나되는 자리에서 비로소 이루어진다.
▣ 1970.10.4(일) 전본부교회
035-082 "행복하다" 할 수 있는 자리는 제일의 계명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고 하나되는 자리에서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인되시는 하나님, 부모 되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전에 종이나 자식이 먼저 기뻐하는 것은 비원리적입니다. 주인이 기뻐하는 기쁨을 따라 기뻐해야 하는 것이 종의 도리요 부모가 기뻐하는 기쁨을 따라 기뻐해야 하는 것이 자녀의 도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는 악이 먼저 출발했기 때문에 주인이 기뻐하고 부모가 기뻐할 수 있는 기쁨의 출발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러한 결과적인 입장에서 개인이 스스로 개척하여 아무리 기쁨을 느낀다 하더라도 그 기쁨은 어디까지나 주인을 이탈한 자리에서의 기쁨이요 부모를 이탈한 자리에서의 기쁨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참된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이탈된 자유의 환경에서 벗어나 주인의 사랑을 중심 삼고 주인이 기뻐하는 터전 위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은 것이 종의 소원이요 부모의 사랑을 중심 삼고 부모가 기뻐하는 터전 위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고자 하는 것이 자녀의 소원인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종교의 사명이요 역사가 찾아 나오고 있는 목적점임을 부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이 기뻐하고 땅이 기뻐하며 온 만민과 피조세계가 기뻐할 수 있는 행복의 터전,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기틀 위에서 이루어진 자유의 실체가 이 지구상에 현현했느냐 하면 아직까지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신이 있는 곳에 자유함이 있다"는 말씀이 있듯이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는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입장에서는 아무리 자유를 부르짖는다 하더라도 자유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선보다 악이 먼저 타락한 이 세상에서는 진정한 자유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처음 태어난 입장을 밟고 넘어가야 할 운명권에 놓여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문제는 무엇을 기반으로 해결해야 될 것이냐? 사랑입니다. 행복은 사랑을 빼놓고는 있을 수 없습니다.
4) 슬픔도 같이하고 기쁨도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자가 행복하다.
▣ 1959.7.5(일) 본향을 찾아가는 인생길. 전본부교회.
007-040 여러분, 행복한 자는 붙들고 울어 줄 수 있는 사람을 많이 가진 사람입니다. 자식이 좋다는 것은 무엇이뇨? 부모가 어려울 때, 부모가 눈물지을 때 같이 울어 주기 때문에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또 부모가 기뻐할 때 같이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픔도 같이하고 기쁨도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자는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친구 중심 삼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나를 위하여 죽을 때 울어 주고, 슬플 때 같이 울어 주기 힘듭니다. 그럴 수 있는 분은 부모입니다. 하늘은 그런 분입니다.
5)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이 3대 사랑이 결합하게 될 때 인간은 행복해진다.
6) 행복하다는 것은 부러운 것이 없어야 한다.
▣ 1968.3.31(일) 전본부교회. 형제의 애.
- 서울 지역교회를 10개로 분할. 책임자 및 활동요원 선정 후 파송 전날 예배.
020-038 천국 사랑의 뿌리는 무엇인가? 내가 있기 전에 누구의 사랑이 있어야 하느냐? 부모의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다음에는 앞으로 내가 있으려면 부부의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식의 사랑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3대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이 3대 사랑이 인간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관을 초월할 수 있는 영원한 실존적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3대 사랑이 결합하게 될 때 인간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전하면 행복도 완전한 것이요 이것이 결여되면 불행이 깃드는 것입니다. 어머니 없는 사람이 행복합니까? 어머니가 없는 만큼 불행한 것입니다. 또 아버지가 없는데 행복합니까? 아버지 없는 사람은 아버지 있는 사람이 부럽습니다.
행복하다는 것은 부러운 것이 없어야 합니다. 사랑도 부러운 게 없어야 합니다. 부러운 것이 있으면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없어도 행복할 수 없고 어머니가 없어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남자가 아무리 배포가 크고 큰소리쳐도 여자가 있어야 됩니다. 아내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부부끼리 재미있게 살다가 남편이 훌쩍 가게 되면 부인은 눈물을 흘립니다. 남자가 없어도 안 되고 여자가 없어도 안 되는 것입니다.
020-040 다음에 부부끼리 아무리 정이 있게 산다 하더라도 아들딸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불행합니까, 행복합니까? (불행합니다.) 아들만 필요합니까? 아들딸이 다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부모한테 아들딸 둘밖에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들을 두고 볼 때 그에게는 누나가 필요하고 또 형이 필요하지요? 또 딸에게는 오빠가 필요하고 언니가 필요합니다. 또 그들에게는 남동생과 누이동생이 필요합니다. 형님이 있어야 되고 누나가 있어야 되고 남동생 누이동생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다 갖추어지지 않으면 불행한 것입니다. 여동생 남동생 누나 오빠 다 갖추어져 완전히 하나되는 가정은 하나님이 보호하십니다. 이것이 씨족과 민족의 기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를 중심 삼고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님 그다음엔 남동생 여동생 거기다 나까지 합하면 몇 명입니까? (7명입니다.) 그래서 7수가 완성 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완성이란 사랑을 두고 말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어찌하여 7수가 완성수냐? 무엇 때문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지창조가 7수를 중심 삼고 완성되었느냐? 그러한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3수는 하늘 수요, 4수는 땅 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3수는 아버지 어머니 나 해서 3 수입니다. 그러면 4수는 무엇을 말하느냐? 위의 3수에 동생들까지 합한 것이 4수입니다.
7) 7수가 완성수. 부모, 자녀, 형제.
▣ 1971.2.11(목) 참된 사람들. 마포교회.
- 서울 9개 지구 야간순회.
040-332 여러분,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남자가 있으면 반드시 누가 있어야 돼요? 행복한 집안에 주인 양반이 있으면 누가 있어야 돼요? 주인 마나님이 있어야 됩니다. 있어야 돼요, 없어야 돼요? 그건 절대적입니다.
주인 양반 부부가 있으면 또 누가 있어야 돼요? 아들딸이 있어야 돼요. 그래야 인륜을 중심 삼은 도덕관념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도덕관념이라는 것은 혼자서는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전후 좌우 상하의 인연을 맺어 가는 데 있어서 도덕관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 1976.1.25(일) 참된 자녀로서 아버지 앞에 돌아가겠나이다. 미국.
082-199 언제나 행복한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형제를 가진 걸 자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남편, 아내를 가진 걸 자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자녀를 가진 걸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3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8) 나만이 갖고 있다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을 가진 사람은 행복합니다.
▣ 1962.12.18(화) 나는 누구냐. 춘천교회.
012-113 나만이 갖고 있다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을 가진 사람은 행복합니다.
▣ 1960.5.1(일) 행복한 무리들. 전본부교회.
009-143 여러분, 이 세상에서 무엇이 제일 귀합니까? 무슨 보물입니까? 둘이 지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은 기쁜 것이 못 됩니다. 행복하다고 할 수 없어요. 둘이 소유하고 있는 그 자리에 행복이라는 명사는 없습니다.
천지간에 제일 귀한 분이 하나님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뇨? 아까 말한 바와 같이 제일 귀한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면 이 천지간에 제일 귀한 것은 무엇이뇨? 모든 존재물 전부가 자기의 생명을 주고라도 갖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런 귀한 것을 여러분은 가져 보았습니까?
여러분, 금은보화가 귀해요? 자기의 생명을 주고라도 갖고 싶어요?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피조물이 자기의 생명을 주고라도 갖고 싶어하는 분이 있으니 그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가치의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천상천하에 어떤 귀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 지음 받은 상대적 존재로되 하나님만은 주체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내 것 삼을 수 있다는 이 한 사실, 얼마나 감격적인 일입니까? 하나님이 내 것이야, 내 것.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분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고 형제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12. 행복이 어디에 있더냐?
1) 사랑에 있다.
▣ 1972.7.9(일) 섭리의 십자로. 전본부교회.
059-101 행복이 어디에 있더냐? 지식에 있는 것이라면 그 지식을 찾아가라구요. 행복이 어디에 있더냐? 사랑에 있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진대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다라고 했습니다.
2) 과거 현재 미래의 승리의 기쁨이 보장되는 데에 행복이 있다.
▣ 1970.1.11(일) 일심 통일. 전본부교회.
028-156 여러분이 행복하다는 말을 할 때 행복이라는 그 말은 승리한 과거를 가지고 있을 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현실에서는 중심적인 자리를 결정하여 세계면 세계 앞에 영원히 남아질 수 있고 만 존재 앞에 혹은 만유의 존재 세계 앞에 중심으로 세워지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할 수 있는 데서 행복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실에서만이 아니라 미래에 있어서도 영원한 기쁨이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서 일치된 내용임을 보장받을 수 있는 데에서 비로소 행복의 기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위할 수 있는 중심 기준이 없이는 우리 인간은 만족과 행복을 얻을 수 없다.
▣ 1957.4.7(일) 우리들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전본부교회.
002-163 우리 인간은 다른 사람과 인연을 맺지 않고서는 생활할 수 없습니다. 개체도 마음과 몸이 관계를 맺어 서로 위할 수 있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위하는 입장이 더 발전하여 가정을 위하고 민족을 위하고 사회와 국가를 위하고 나아가서는 전 우주까지 위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위하는 생활은 종교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위하는 생활인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 삼고 평면적으로 위할 수 있는 기준을 찾고 나아가서 입체적인 관계까지 맺어 한 중심을 위할 수 있는 기준을 찾아야 하며 그런 후에 가정 국가 세계 우주적으로 한 중심과 한 중심과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생활은 해야 합니다. 이 위할 수 있는 중심 기준이 없이는 우리 인간은 만족과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4) 보다 큰 희망. 보다 큰 꿈.
▣ 1977.1.3(월) 이상과 실천. 시카고.
- 환드레이징 멤버.
090-235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아무것도 갖지 않았지만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고 그 가진 세계를 넘어서 더 큰 꿈을 꾸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 꿈과 더불어 살고 꿈과 더불어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된다구요.
▣ 1971.3.7(일)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 전본부교회.
042-180 소망이 없는 사람은 하루의 생활에 있어서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없습니다. 반면 강한 소망을 가진 사람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강하게 하루의 생활을 잘 넘길 수 있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사람 중에는 평범한 자리에서 소망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어려운 자리에서 소망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평범한 자리에서 갖는 소망과 어려운 자리에서 갖는 소망은 그 차이가 크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평범한 자리에서 소망을 갖고 나가는 사람은 그저 평범한 자극과 평범한 결의로서 소망을 향해 나갈 수 있지만 어려운 자리를 중심 삼고 소망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그 사람은 그 어려움에 비례되는 극복의 요소를 투입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난에 부딪힌다든가 고독한 자리에서 새로운 소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당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 사람이 지극히 불쌍한 사람이요 지극히 동정받아야 할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을 동정하던 사람들과 그를 평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불쌍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5) 슬플 때 자기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친구를 가진 사람입니다.
▣ 1961.2.15(수) 하나님 앞에 나를 얽어매자. 전주교회.
150-195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슬플 때 자기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친구를 가진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고통당할 때 그 고통을 내가 대신 받겠다, 당신은 그 고통의 자리에 나가지 말라, 내가 대신 나가겠다고 생명을 각오하고 나설 수 있는 친구나 사랑하는 아들이나 딸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 그런 사람 다 가졌어요? 가졌느냐 말이에요.
6) 울고 웃고 하는 데 있다.
▣ 1992.5.3(일) 통일교회의 꿈. 벨베디아.
230-174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하하하" 웃는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웃고 울고 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기뻐도 눈물 나고 슬퍼도 눈물 나지요?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다 그렇다구요.
슬픔의 밑창에는 대번에 눈물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또 슬픈 눈물 끝에는 반드시 좋은 것이 오는 것입니다. 동양 격언에 고진감래라는 게 있다구요.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뜻으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라구요. 알겠어요?
7) 목적 없이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
▣ 1971.2.18(목) 동대문교회. 우리의 갈 길.
- 서울 9개 지구 야간 순회 때 말씀
041-319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사람이든지 목적 없이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목적이 철두철미하고 확실해야 현재에 처하고 있는 행복도 확실한 것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8) 犧牲.
▣ 1971.2.18(토) 우리의 갈 길. 동대문교회.
- 서울 9개 지구 야간 순회.
041-347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행복한 사람은 없는 거라구요. 타락한 인간으로서 선한 자리를 찾아 올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올라가는 데에 있어서 나를 위주하면 올라갈 길이 없는 거예요. 알겠어요? 나를 중심 삼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자리에서는 못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마지막이라는 거예요.
* 그러면 내가 가는 길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지 않고는 올라갈 길이 없습니다. 알겠어요? "가정아, 네가 나를 위해서 가라!" 이것이 아니라 내가 가정을 만들어야 됩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놔야 돼요. 그래야 내가 가정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겁니다. 그렇지요?
13. 타락과 불행
1) 인생은 고해
▣ 1970.10.3(토) 선악의 출발의 선후. 전본부교회.
- 제2회 전국 성화 대학생 총회.
035-057 또 다른 사랑이 몸뚱이를 통해서 주인 되어 플러스가 생겨났습니다. 플러스 Dash가 생겨났다는 거예요. 플러스와 플러스는 반발합니다. 그러니 몸과 마음이 어떻게 되겠어요? 서로 반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체에는 서로 다른 사랑의 목적을 중심 삼은 마음과 몸이 서로 상반된 인연 가운데서 몸부림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苦海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행복하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있다면 그는 아마 미친 녀석일 것입니다. 행복은 무슨 행복이에요? 행복하지도 못한 녀석들이 뭐가 잘났다고 눈을 껌벅껌벅거리며 먹고살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孤兒 중에 처량한 고아가 되어 가지고 그래도 살겠다고 하니 그것이 인생의 불행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2) 불행으로 출발한 인류 역사.
▣ 1960.7.3(일) 답답하고 민망한 예수. 전본부교회.
010-050 인류 역사가 행복으로 시작하였느냐 불행으로 시작하였느냐 할 때에 행복으로 시작하였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더욱이나 우리들 개체에 육체적인 고충과 정신적인 고충이 있는 것을 볼 때에 우리 인간 조상이 행복의 길을 출발한 것이 아니라 불행의 길을 출발하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3) 불행의 세계가 끝나는 때가 끝날.
▣ 1959.9.27(일) 하나님의 가정에서 살 식구들. 전본부교회.
007-261 오늘날 세계 인류는 행복합니까? 불행합니까? 행복하다기보다는 불행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 불행의 세계가 끝나는 때가 끝날입니다.
4) 악과 싸워 승리하지 않으면 행복은 있을 수 없다.
▣ 1961.10.14(토) 부모의 심정으로 끝까지 주라. 한국.
- 흥남 감옥 출옥 기념일.
011-234 세계 인류는 모두 불행하다. 인간처럼 불쌍한 존재는 없다. 악과 싸워 승리하지 않으면 행복은 있을 수 없다. 혹 행복이 오더라도 그것을 느낄 수 없다.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공의를 위해 싸우고 하나님 대신 주어야 한다. 도의 길은 주는 길이다. 가정에서부터 세계, 하늘 끝까지 주어 가지고 돌아와야 한다.
5)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
▣ 1989.3.5(일) 본부교회. 단결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189-0919 인간들이 바라는 행복이라는 것은 개인에서 시작해 가지고 세계를 넘어서 영계가 있으면 영계를 거쳐 가지고 하나님이 계시면 하나님까지도 연결시킨 전체가 행복한 환경으로 이어져야만 됩니다. 그래야 영원한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이어지지 않는 한, 인간 세계와 영계가 이렇게 이어지지 않는 한 인간 세계와 영계가 차이가 있다 할 때는 인간은 그 차이점을 어느 때를 통해서라도 메우지 않고는 하늘나라의 행복권에 동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게 문제예요. 행복의 길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는 타락한 세계니만큼 冒險을 무릅쓰고 모든 일에 勇猛스러워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말씀에도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게 전부 다 矛盾된 말입니다. 逆說的 論理예요.
6) 타락이라는 서러운 운명에 봉착하지 않았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행복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 1961.2.12(일) 모시고 싶은 아버지. 전본부교회.
011-088 그러면 여러분은 과연 절대자를 대하여 이름 아닌 실체로서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 있습니까?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인류가 타락이라는 서러운 운명에 봉착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행복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행복은 사람을 중심한 것이 아니라 창조주를 위주로 한 것입니다. 반드시 창조주를 위주로 하여 행복을 주장하고 선의 이념을 주장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의 맘에도 몸에도 창조주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에도, 여러분의 일생의 노정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 감각까지도 창조주와 더불어 인연되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14. 최고의 행복의 기준이란?
1)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
▣ 1961.7.17(월) 전본부교회.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자.
- 전국 순회 후 본부교회 집회.
011-207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행복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돈도 아니요 재산도 아니요 지식도 아닙니다. 인간의 최고의 행복은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는 것입니다.
▣ 1971.3.27(토) 수난의 길을 거쳐 찾아진 날. 중앙수련원.
- 제12회 참부모의 날. 한일 식구와 지도자.
042-279 인간의 소원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무엇을 할 것이냐? 그저 구경이나 하면서 살 것이냐? 아닙니다.
하나님 속에 있는 단 하나의 사랑을 중심 삼아 이야기하고 그 사랑을 몽땅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할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소망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인간 최고의 행복의 기준과 최고 희망의 기준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2) 사랑.
▣ 1972.8.6(일) 아버님의 슬픔. 전본부교회.
060-074 사랑이 없으면 이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행복도 정서적인 관계에서 ···, 통일교회 문 선생이 혼자 있고 아무도 없다면, 정서적인 면에 있어서 아무 상대도 없다면 그건 불행하다구요.
세계적인 대통령이 된 어떤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가 독신이 되어 아들딸이 없으면 "아 그 사람 불쌍하다." 그러지요? 대번에 그런 레테르가 붙는 거라구요. 인간의 최고의 행복의 기준은 뭐냐? 사랑이라구요. 사랑.
15. 행복은 우리에 게 무엇을 보장해 줄 수 있어야 하는가?
- 영원한 희락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동시에 영원한 감사를 보장해 줄 수 있어야 한다.
▣ 1957.6.9(일) 본향인 에덴을 찾아가는 우리들. 전본부교회.
002-243 오늘날 우리 인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행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행복은 우리에 게 무엇을 보장해 줄 수 있어야 하는가? 그 행복은 영원한 喜樂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동시에 영원한 感謝를 보장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6. 행불행은 어떻게 갈라지느냐?
- 마음대로 주고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갈라진다.
▣ 1961.10.14(토) 부모의 심정으로 끝까지 주라.
- 흥남감옥 출옥 기념일.
011-234 주는 데는 원수를 치우고 주어야 하니 싸움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주려 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몰라서는 안 된다. 주기 위하여 6천 년간 싸워 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한다.
행복한 사람은 주고 싶은 때 줄 수 있고 받고 싶을 때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불행한 사람은 줄래야 줄 수 없고 받으래야 받을 수도 없는 사람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하나님은 불행하신 분이다.
▣ 1964.4.12(일) 부모의 마음. 대구교회.
- 제5회 참부모의 날 행사.
013-247 행불행은 어떻게 갈라지느냐? 마음대로 주고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갈라집니다.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받을 대상이 없고, 받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줄 주체가 없을 때는 불행한 것입니다.
주는 데는 자기의 제일 귀한 것을 서슴지 않고 줄 수 있어야 하며 어떠한 환경에 제약을 받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이 인간 본연의 마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후, 온 우주의 귀한 모든 것을 인간에게 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주는 데는 어떠한 환경의 제재나 시간적 제한을 받지 않고 주고 싶어하셨습니다.
▣ 1967.6.8(목) 제5회 참만물의 날. 전본부교회
018-208 불행한 사람은 받을 수는 있어도 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받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 주고받고 해야만 되는가? 그것은 창조원리에서 밝혔듯이 영원히 존재하기 위해서입니다.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상권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주고받으면 마음이 왜 좋으냐? 우주의 힘이 통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즐거움이 같이하기 때문에 즐거운 것입니다.
▣ 1967.6.11(일) 전본부교회. 성신.
018-249 행복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받을 것이 없어도 줄 것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받을 것은 있지만 줄 것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고 선을 주장하는 사람은 도움을 주려고 해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짐승같이 악한 사람들은 받으려고 하지만 불행한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영원히 받을 수 있고 영원히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17. 불행한 이유.
1)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변치 않는 심정의 중심을 못 가진 연고.
▣ 1959.9.20(일) 두 세계를 대하고 있는 나. 전본부교회.
007-245 여러분들이 불행을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마음의 중심과 화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외적인 고충이 아무리 많다 해도 마음으로 화하여 즐길 수 있는 입장에 있다면 그는 행복한 자일 것입니다. 그러면 불행을 왜 느끼느냐?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변치 않는 심정의 중심을 못 가진 연고입니다. 원인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2) 마음을 중심하고 자기의 몸을 하나로 못 만드는 사람.
▣ 1958.4.6(일) 참목자와 참된 양 무리, 거짓목자와 거짓된 양 무리. 전본부교회.
004-157 그래서 마음을 의지하여 몸이 따를 수 있으며, 몸을 의지하여 마음이 응할 수 있도록 하는 이 일이 역사적인 큰 일이요, 우리 인간에게 지극히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 비록 사회적으로는 권세와 영광을 누리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음을 중심하고 자기의 몸을 하나로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면 그는 불행한 사람인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무형의 하늘과 관계를 맺고 있고, 우리의 몸은 유형의 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니 내 자체는 지극히 작은 존재로되 우리가 가진 마음과 몸은 지극히 크고 넓은 세계와 인연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 자신들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3) 3대 부모 앞에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 1958.428(월) 6천 년 동안 남겨진 빚을 누가 담당할 것인가. 전본부교회.
004-199 그러면 인간들이 어찌하여 행복과 만족을 얻지 못하고 있었던가? 그것은 우리가 말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부하된 빚을 우리가 청산하지 않는다면 개인과 국가 세계에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 나아가 내 전후 좌우 상하를 헤라여 보게 될 때에 하늘땅 앞에 말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선조가 하늘땅 앞에 남겨 놓은 짐을 탕감하지 못하고 있고 죄악의 혈통을 인계받아 살고 있는 서러움의 한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 우리는 빚을 지고 있으되 3대 부모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즉 혈육의 부모, 우리의 몸을 구성시켜 준 땅과 하늘로부터 받은 생명의 인연에 대한 빚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3대 부모의 인연을 벗어나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애를 분석해 보면 우리는 물질적인 면에서 땅 앞에 빚진 사람들이며 혈육의 부모 앞에, 하늘 앞에 말할 수 없는 빚을 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18. 天心이나 天情을 느낄 줄 아는 사람.
▣ 1959.6.28(일) 전본부교회. 그리운 에덴.
006-336 자신의 무엇을 나타내기에 앞서 타락성에 물든 죄악 역사를 드러내고 죄악의 본성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런 입장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리를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때 하늘은 기필코 역사적으로 물든 죄상을 청산해야 되고 혈통적으로 맺혀져 내려오는 죄악의 원한을 풀어야 됩니다.
이 죄악의 원한을 푸는 것이 하늘의 소원이요 우리의 소원인데 그 모든 것을 드러내는 날이 없다 할진대 해원의 한 날이 없을 것이요 해방의 한 날이 없을 것입니다.
해원과 해방의 한 날이 없다 할진대는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뜻이 성취되는 한 날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성취의 한 날이 없다 할진대는 인간을 대하여 섭리해 나오시던 하나님의 영광의 한 날이 없을 것이요, 섭리를 뒷받침하여 따라 나오고 있는 인간도 영광의 한 날을 맞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들은 마음으로 몸으로 혹은 심령으로 自然의 모든 神性을 느낄 줄 알아야 되겠고 인간의 本性이 하늘 心情의 感觸을 느껴야 되겠고 본질, 본성, 본성품을 통하여 몸에 體恤되어 들어오는 어떠한 天心이나 천정을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그러한 사람이 있다 할 진대 그는 이 땅 위에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타락 전, 인류의 조상은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을 수습하여 만물은 하늘 앞에 영광의 조건으로, 기쁨의 상징적인 대상으로 미의 대상으로 자극을 일으킬 수 있는 하나의 외적인 대상으로 세우고 그 만물로부터 오는 자극을 통하여 내적인 자극을 일으켜 천성의 심정을 대하여 영광의 실체임을 자랑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이 무엇보다도 슬픔이 된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 1970.1.4(일) 하늘 편. 전본부교회.
- 기도 중.
028-147 아버님, 지난날 저희들에게 슬픔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추억할 수 있고 하늘 편으로 남아질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도리어 그것에 감사하옵니이다.
저희들은 불행한 사람들이 아니옵나이다. 저희들은 남이 갖지 못한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남이 갖지 못한 현실에 대한 투지를 갖고 있사옵니다.
* 저희들은 언제나 하늘 편이냐 사탄 편이냐 하는 것을 가려 나가야 되겠사옵니다.
19. 최하의 자리에서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 1963.7.27(토) 나는 누구냐. 전본부교회.
- 제1회 전국 성화 학생 특별 수련회 개회식.
012-286 최하의 자리에서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20. 나에게 불행한 일이 있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나님이 탕감의 역사를 해 나오시기 때문입니다.
▣ 1970.8.30(일) 전본부교회. 본을 삼자.
034-137 우리 생활 가운데는 탕감의 시대가 있습니다. 정상적인 생활에서나 비정상적인 생활에 있어서 불행한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불행을 불행으로 소화해서는 안 됩니다. 불행한 처지에 부딪쳤을 때 나 혼자 그것을 해결지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소화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에게 불행한 일이 있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나님이 탕감의 역사를 해 나오시기 때문입니다. 탕감의 역사는 민족과 세계를 걸어 놓고 하는 것입니다. 탕감의 역사를 하는 데는 선한 사람이 제물이 되지 않고는 탕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복귀의 내용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자신이 불행한 자리에 섰다면 그것은 내가 만민을 살리기 위해 짐을 진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이런 짐을 지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당한 도리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더불어 생활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소화시켜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대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요, 하나님과 함께 끝을 맺는 것입니다.
* 오늘 하루가 좋다고 해서 "하나님, 오늘은 참으로 감사합니다" 해서는 안 됩니다. 또 슬프다고 해서 "하나님, 오늘은 참으로 슬펐습니다" 이렇게 해서도 안 됩니다. 좋으면 좋은 대로 감사하고 나쁘면 나쁜 대로 감사해야 합니다. 나 자신에게는 마아너스가 될는지 모르지만 공적인 분야에 있어서 전체 앞에 좋을 수 있다면 전체를 위해서 좋아해야 됩니다. 나로 말미암아 전체가 좋을 수 있다면 좋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선은 전체 앞에 좋은 것을 주는 것입니다.
21.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 1963.12.29(일) 우리의 결의와 각오. 전본부교회.
- 밤 예배.
013-132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선생님은 고생에 있어서는 산 역사를 가지고 있다.
▣ 1962.4.13(금) 우리들이 해야 할 일. 전본부교회.
- 제10회 전도사 수련회 수료식.
011-331 복은 편안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못 먹고 애달프고 눈물 흘리는 자에게 오는 것입니다. 심정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그에 따라 축복은 커지는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의 행동이 천추만대의 후손에까지 미치는 때가 이때입니다.
고통의 자리를 거치지 않은 자에게 복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종 중에서도 가장 소통스러운 종의 자리, 양자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양자의 자리를 거쳐야 헙니다.
* 잘 사는 사람보다 고생을 많이 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제일 높은 기준은 제일 고생하는 것입니다.
22. 불행한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 불행을 물리치고 진정한 행복을 만들어 가는 사람.
▣ 1961.9.20(수) 두 세계의 왕자가 돼라. 전본부교회.
- 제8회 전도사 수련회.
011-224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합니다. 외적 곧 환경적으로 행복하다 할지라도 그 행복이 영계에까지 미쳐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절대자가 찾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불행한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 불행을 물리치고 진정한 행복을 만들어 가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토대로 구태어 오늘 드릴 말씀의 제목을 붙이자면 "두 세계의 왕자가 돼라"는 것입니다. 슬픔과 기쁨, 이 두 세계의 왕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011-226 우리는 행복의 문을 두드리기 전에 불행의 요소를 해부해야 합니다. 이 기준을 넘어야 우주적인 왕자가 될 수 있습니다.
* 선생님은 기도할 때 전당 가겠다고 기도하지 않고 슬픔을 청산짓겠다고 기도합니다. 하늘에 가서 좋은 위치에 서려면 땅에서 좋은 위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기쁨과 슬픔의 두 세계를 정복해야 합니다.
* 여러분은 어떠한 난경에 빠질지라도 그 환경을 점령하고 그 가운데에서 무한한 가치를 찾아 노래하여 그 환경을 밟고 다져서 콘크리트처럼 견고한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선의 세계가 왔을 때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주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천국은 지옥을 피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지옥의 밑창을 뚫고 가야 합니다. 천국을 가기 위해서는 죄의 문제와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을 위하여 싸우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세계를 제패하기 위해서는 가장 천한 자리로 내려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1970. 8.30(일) 본을 삼자. 전본부교회.
034-141 고통스러운 가운데에서도 행복을 느끼면 그 사람이 제일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것은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스러운 자리에서 좋아하는 사람은 고통스러운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타락하기 쉽고 떨어지기 쉽지만 아예 밑으로 내려가서 행복을 찾아 나오는 사람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가면 갈수록 행복이 찾아드는 것입니다.
* 어려운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도 '아이구, 좋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탄은 항상 좋은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기에 좋은 것은 순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자리, 슬픈 자리를 소화시켜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생활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은혜롭고 건강한 생활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 그렇기 때문에 슬픈 일을 당하더라도 그 슬픔을 슬픔으로 소화하는 것보다도 하나님과 더불어 기쁨으로 소화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국가와 세계를 위해 탕감의 노정을 간다고 생각하면 어떠한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기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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