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데 희망이 찾아온다. - 12가지.

true2020 2015. 10. 8. 15:02

1. 웃는 데는 희망이 찾아온다.

집안의 웃음의 여왕이 누구냐 하면, 부인이다.

 

1996.8.1(목) 양심을 따라서. 쇼햄 호텔. 워싱턴.

- 세계평화가정연합 창설대회 후, 남미 지도자 모임.

 

279-134 웃는 데는 희망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웃는 데는 희망이 찾아온다." 한번 해 봐요. 스페인어로 한번 소리 내서 해 봐요. 웃는 데는 희망이 찾아온다! 집에 들어가게 되면 집안의 웃음의 여왕이 누구냐 하면 부인입니. 부인이에요. 아줌마예요. 엄마예요. 엄마와 아내예요.

 

그래, 언제나 웃음의 꽃이 되어 있어요? 어디 나갔다 와서 아들들이 보더라도 엄마가 좋아하면 척 보고 야,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아한다 해서 달려가서 키스하고 안기고 그래요. 그래서 어머니다운 권위가 서는 것입니. 아내가 남편 갔다올 때 웃게 되면 거기에 꽃이 피는 것입니. 그것을 왜 안 해요? 여자들이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 엄마를 좋아하는 아기들을 품고 "호호호!" 하는 것이 여자의 웃음입니다. 그다음에 엄마와 아기가 사랑하는 것을 품고 "하하하!" 하며 남자가 웃어야 돼요이 품는 것도 크니까 거기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아멘!

 

279-136 싸우는 데는 승리가 없고 평화가 없고 행복이 없고 자유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도 안 계셔요. 선도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몸 마음을 하나 만들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참사랑입니다.

 

* 하나님이 누구냐 하면 참사랑의 발전기입니다.

 

2. 사람은 어떤 곳에서 살아야 되느냐?

- 지극히 행복한 곳에서 살아야 됩니다. 그 세계는 어떠한 세계냐 하면 웃고 춤추고 노래하는 곳입니다.

3. 세포까지 웃는다는 것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저 나라에 가서도 졸장부가 되는 것입니다.

 

1969.1.1(수) 전본부교회. 전면적인 진격을 계속하자.

- 제2회 참하나님의 날.

 

021-344 사람은 어떤 곳에서 살아야 되느냐? 지극히 행복한 곳에서 살아야 됩니다. 지극히 이상적인 세계에서 살아야 됩니다. 그 세계는 어떠한 세계냐 하면 웃고 춤추고 노래하는 곳입니다. 즉 좋은 바람에 취해서 사는 세계입니다.

 

통일교회에서 이것을 못 느끼면 곤란합니다. 세포까지 웃는다는 것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저나라에 가서도 졸장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노래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춤을 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목적도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인생길 또한 무엇을 찾아 나가는 길이냐 하면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길입니다. 그 하나님은 현실적인 하나님입니다.

 

4.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100% 사랑을 해야 하고 웃는 데 있어서도 100% 웃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1970.7.19(일) 전본부교회. 개척자의 사명.

- 낮예배 후 하계 전도를 위한 말씀.

 

032-251 사람 가운데는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 남자는 좋아서 춤추고 한 여자는 슬퍼서 울고 있다면 그걸 보시는 하나님이 좋아하시겠습니까?  남자와 여자가 함께 좋아서 춤을 출 수 있고 하나님까지도 거기에 맞춰 춤출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럴 수 있는 날이 어떤 날이냐 하면 아담 해와의 결혼식 날인 것입니다. 

 

* 웃을 때도 마주 보면서 입만 빵긋하며 웃는 것이 아니라 크게 소리를 내면서 팔다리까지 허우적거리며 세포 하나하나까지 몽땅 웃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좋은 것이지 입만 웃고 몸뚱이는 가만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100% 사랑을 해야 하고 웃는 데 있어서도 100% 웃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100% 웃는데 여자는 조금만 웃으면 안 됩니다. 남자가 웃을 때 몸 마음 다해서 웃으면 여자도 그렇게 웃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천지가 다 웃으면서 거기에 관심을 갖기 않을 수 없는 자리에서 사랑을 해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 사랑할 수 있는 남자와 여자가 이 땅 위에 나온다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벌주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이라면 쓸데없다는 것입니다.  

 

5. 우는 소리 듣고 싶어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 님은 싫은데 여러분은 모르겠습니다. 우는 소리는 듣기 싫은 모양이군요. 나 닮았군요.

6.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면 선은 어디에 있느냐? 웃고 사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1970.6.4(목) 전본부교회. 제8회 참만물의 날.  

031-258 만물도 매일같이 웃음소리를 듣고 싶지 우는 소리는 듣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우는 소리 듣고 싶어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선생님은 싫은데 여러분은 모르겠습니다. 우는 소리는 듣기 싫은 모양이군요. 나 닮았군요.

 

그러면 웃는 소리 듣기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전부 드는구만.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하시냐? 하나님께서도 역시 웃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모두가 웃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면 선은 어디에 있느냐? 웃고 사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웃음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영원한 권한을 가진 주체로 계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나쁜 것도 선한 것으로 소화해서 그 나쁜 것을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7. 웃을 때에는 공적인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8. 자기 자신을 놓고 눈물 흘릴 줄 모르는 사람은 상대를 위해서도 눈물 흘릴 줄 모르는 사람이요 자기를 놓고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은 상대를 위해서도 웃을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1970.11.22(일) 전본부교회. 전진과 후퇴.

036-108 웃을 때에는 공적인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옛말에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웃는 사람에게 나쁘게 하면 벌 받는다"는 말이요, 웃음을 반대하는 사람은 용서를 못 받는다는 뜻입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 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웃는 것은 무한히 공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웃고 계실 것이냐, 울고 계실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은 공적인 분이기 때문에 울고 계셔서는 안 됩니다. 웃고 계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나 입을 벌리고 웃고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충만한 웃음을 웃고 계셔야 하는데 까딱하면 폭소가 벌어질 것이요, 까딱하면 폭소의 반대되는 폭비가 벌어질 것이다. 그러한 분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슬픈 면을 알게 되면 그 슬픔 앞에서는 내 슬픔은 사라지기 때문에 기쁨이 나오는 것입니다. 슬픔이 지나면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은혜의 자리도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할 때는 눈물 콧물을 흘리고 창자가 끊어지고 숨이 끊어지는 듯한 경지까지 들어가야 됩니다. 그렇게 한바탕 울고 나면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기쁨에 충만해 계시는 반면 무한히 슬픔이 폭발되어 나올 수 있는 안팎으로 두루 충만함을 갖춘 분입니다. 그래서 그 슬픈 일면을 찾아 들어가 끝에 가게 되면 기쁨으로 화하는 것입니다. 또 기쁜 일면을 찾아 들어가게 되면 슬픔의 경계선이 점차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차되어 하나를 이루고 만족을 느낄 때 폭발적인 만족을 느낄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여러분도 뜨거운 것과 찬 것이 부딪치게 되면 어떻습니까? 폭발되지요? 그렇지요? 그러나 뜨거운 것끼리 부딪치면 폭발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조화를 이루며 형성되어 있는 절대적인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친구를 원할 때 눈물이 있는 친구를 원합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울고 찔찔 짜는 그런 친구를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눈물이 있는 반면 웃음이 충만한 사람을 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언제나 찡그린 얼굴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넘치는 희열을 발견할 수 있어야만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남이 울 때 같이 울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복 받는 것입니다. 그런 거예요. 복이라는 것은 영원히 떠나고 싶은 않는 자리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036-112 자기 자신을 놓고 눈물 흘릴 줄 모르는 사람은 상대를 위해서도 눈물 흘릴 줄 모르는 사람이요 자기를 놓고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은 상대를 위해서도 웃을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가 웃었다 해도 그 웃음은 순수한 웃음이 아니요 만민에게 필요한 웃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를 내세우기 위해 웃는 웃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9. 진짜 웃음과 가짜 웃음이 있다.

 

▣ 1970.12.23(수) 전본부교회. 복귀의 한계점.

037-127 기쁨도 자기를 잊고 주고받아야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라는 것이 있으면 웃어도 처량하게 웃는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기쁠 수 있어요? 자기를 잊어버리고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야 할 텐데 자기를 떡 세워 놓고서 호호호 한다고 기쁠 수 있어요? 기쁠 수 없다는 겁니다.

 

037-131 사람이 웃는 데도 가짜 웃음이 있고 진짜 웃음이 있습니다.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알긴 아는구만. 말하는 데도 진짜 말, 가짜 말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행동하는 데도 진짜 행동, 가짜 행동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진짜고 어떤 것이 가짜냐? 그것을 무엇으로 재느냐?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자기는 손해 보더라도 남을 위주로 하고 남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진짜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10. 잘 산다는 사람이 울며 사는 사람이에요, 웃으며 사는 사람이에요?

 

▣  1997.6.5 벨베디아. 제35회 참만물의 날. 

285-247 그러면 잘 산다는 사람이 울며 사는 사람이에요, 웃으며 사는 사람이에요? (웃으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더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더 잘 사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웃는다고 하게 되면 노랴하고 춤을 추는 것입니다.

 

* 행복은 누구나 다 좋아하는데 행복하게 살려면 눈이 웃어야 돼요. 여기 사람들 가운데 언제나 웃은 눈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코가 웃는 것을 알아요? 이렇게 되어 있던 것이 이렇게 된다구요.  코가 웃는 것입니다. 귀도 웃는데 이렇게 웃는다구요.   

 

11. 눈이 웃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 없다.

 

▣ 1996.11.1(금)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빅토리아 플라자 호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정착과 탕감 해소 선포식.

280-053 나쁜 이름은 다 갖고 있습니다. 킨 마피아, 킹 갱스터, 킹 공산주의자라고 말이에요. 공산주의자 중에 제일 나쁜 왕이 레버런 문이라고 그랬다구요. 민주 세계를 파괴하는 독재자의 왕이다 이거예요. 남자 가운데 제일 악한 대왕이라고 하고 여자를 잡아 가지고 삼켜 버린다고 한다 이거예요. 사람을 물려고 하는 사자보다도 더 무섭다고 소문이 났었습니다.

 

그렇게 무섭게 생겼어요? 내 얼굴을 보면 눈이 먼저 웃는다구요. 눈이 웃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 없습니다. 알겠어요?

 

 

12. 유효원 전 협회장.

하나님을 모시고 하루만이라도 기쁜 얼굴로 웃는 모습을 보면 한이 없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1970.7.28(화) 생사의 한계. 전본부교회.

- 유호원 협회장 장례식 후에 하신 말씀.

 

032-332 그래서 이런 일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올 때가 왔구나!" 하며 하나님은 정말 슬픈 분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아들이 60년대에 불구의 몸으로도 뜻을 중심 삼고 정성을 다 들이겠다고 몸부림친 내적 고충, 외적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 내가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인상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필생에 내가 저 아들을 대신하여 어떠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불구의 그 신세는 면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가 하루라도 건전한 몸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다운 모습으로서 하나님을 모시고 하루만이라도 기쁜 얼굴로 웃는 모습을 보면 한이 없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수술을 하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또 뜻이 찾아 나온 모든 역로를 헤아려 볼 때 그가 피를 흘려야 할 때인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한 수난의 행로를 책임지고 선생님의 명령에 의하여 입원하였다가 선생님의 뜻을 중심 삼고 갔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오늘날 우리 협회가 가야 할 수난의 노정에 있어서 전체는 안 되더라도 한 부분의 슬픔을 대신하여 책임지고 가는 아들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그가 낫기를 기도할 수 없는 나 자신인 것을 느끼며 하나님 앞에 맡기고 나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