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기독교

마태복음 1장의 4대 여인들

true2020 2015. 6. 30. 16:17

1. 유다- 다말-> 베레스와 세라

2. 살몬- 라합 -> 보아스

3. 보아스- -> 오벳

4. 다윗-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

 

▣ 마태복음 제 1 장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눅 3:23-38)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11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12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14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 1971.1.24(일) 전본부교회. 소명을 따라서. 

040-097 마태복음 1장을 보게 되면 4대 여인이 나옵니다. 그중에 밧세바는 솔로몬의 어머니인데 그 밧세바가 끝까지 다윗 왕을 미워했느냐? 만일 그랬다면 그녀는 솔로몬의 어머니가 못 되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로 내쫓고 계획적으로 자기를 점령했지만 그렇게 된 것을 운명으로 돌림과 동시에 그것을 도리어 하늘의 크나큰 뜻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하고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녀는 자기 남편이 희생되더라도 나라가 잘되기를 바라고 기도한 열녀였다는 것입니다.

 

만일 밧세바가 다윗 왕을 미워하는 입장에 섰었다면 그녀에게서 절대 솔로몬 같은 왕이 태어날 수 없습니다. 자기 남편을 죽인 다윗 왕에게 품고 원한을 복수하겠다는 마음이 있었으면 절대로 솔로몬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밧세바는 자기 남편이 죽었지만 그 남편이 충신 되기 위해서는 그 일신이 망하는 것은 물론이요 아내인 자기까지도 군왕을 위해서 바쳐지는 것을 기쁨으로 알아야 한다는 고차적인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밧세바는 남편이 그런 의미에서 "내가 군왕을 위해 일신을 다 바치고 정성과 절개를 다 바쳐 가지고 가는 것이 본 남편에 대한 의리가 아니겠느냐고 생각하고 다윗 왕을 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솔로몬 왕이 태어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다음에 기생 라합을 보면 그녀는 거리의 여인인데 어떻게 예수님의 족보에 조상으로 올랐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녀가 여리고 성을 정탐하러 갔던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숨겨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라합은 술집 여인이었지만 생명을 각오하고 그들을 숨겨주었던 것입니다. 자기 나라와 자기 나라의 어떠한 남자들을 위하는 것보다도 생명을 걸고 그들을 보호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귀해 나가는 금후의 세계에 있어서 여자들이 취해야 할 태도라는 것입니다그런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라합이 하늘의 계대를 이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뜻이 있는 여인이었기 때문에 그랬겠지만 정탐꾼들을 대해 가지고 본심에 있어서 "어떠한 남자들보다 이들을 생명을 걸고 도와줘야겠다" 하는 마음이 강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입장과 처지를 외면하고 그 모든 것을 넘어서 단 하나의 소망의 뜻 앞에 있어서 필요한 여성이 되어야겠다 하는 마음의 자세를 깊은 마음 가운데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이방 여인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이 원수인데도 불구하고 그 민족이 축복받은 민족이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위해서 협조하고 동조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은 그 무엇이 그녀의 생애 노정이 언제나 같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룻을 보게 되면 그녀는 남편이 죽어서 시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었는데 그 시어머니가 보아스의 첩이 되라고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룻은 "시어머님이 나보다도 더 고차적인 입장에서 내 갈 길을 염려해 주시고 나의 모든 것을 염려해 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시어머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자기의 안팎에 대한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 희생의 길을 갔던 것입니다. 이것은 모험하는 것과는 타입이 다릅니다. 이렇게 순응해 가지고 하는 타입은 앞으로 뜻을 세우는 데 있어서 대표적인 여성의 본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두고 볼 때 신앙 길에는 반드시 그와 같은 사명의 분담이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