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1.11.4(목) 하늘이 가는 길. 전본부교회.
051-017 신앙길을 가는 사람들은 신앙길을 가지 않고 있는 일반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그들이 동쪽으로 가고자 한다고 해서 우리도 동쪽으로 갈 수 없는 것이요. 그들이 자기를 중심 삼고 살고 있다고 해서 우리도 그와 같은 생활을 따라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신앙자와 비신앙자는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서로 가는 길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신앙자들은 가정을 중심하고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교회생활도 아울러 해야 한다
2. 신앙자는 교회생활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 외적인 사회생활은 가인적이며 내적인 교회생활은 아벨적입니다.
- 외적인 사회생활의 중심이 되는 것은 내적인 교회 생활인 것입니다.
3. 내적인 교회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공인을 받는 것이 문제입니다.
4. 내적인 모든 핵심을 결정짓는 자리가 바로 교회의 공적으로 집회하는 자리.
▣ 1969.1.19(일) 하늘이 임재할 수 있는 내적 자아. 전본부교회.
022-035 뜻이 아무리 세계적이라 하더라도 여러분이 그 뜻을 도외시한다면 이 뜻과 여러분은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대개 가정을 중심 삼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도 역시 지금까지 가정을 중심하고 사회생활을 해 나왔습니다.
그러면 신앙자들과 불신앙자들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불신앙자들은 가정을 중심 삼고 사회생활만 하면 되지만 신앙자들은 가정을 중심하고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교회생활도 아울러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신앙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입신양명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자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입신양명하는 것보다도 교회생활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그것은 그것들이 가인 아벨과 마찬가지의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외적인 사회생활은 가인적이며 내적인 교회생활은 아벨적입니다. 그렇기에 외적인 사회생활은 내적 생활의 상징체가 되어야 합니다.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여기에서 외적인 사회생활의 중심이 되는 것은 내적인 교회 생활인 것입니다. 내적인 교회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공인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한 사람은 외적인 사회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을 대신한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내적인 교회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공인을 받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통일교인들의 교회에 대한 관념을 생각해 보게 될 때 교회에 모여 집회하는 그 시간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의 공적 집회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기 때문에 뜻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에 대해서도 희박해지는 거예요. 자기가 내적으로 설 수 있는 그 자리가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외적 기준도 확실치 않다는 거예요.
022-036 내적인 모든 핵심을 결정짓는 자리가 바로 교회의 공적으로 집회하는 자리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교회의 공적 집회를 통해서 전통적 기준을 세워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아침 경배 시간이라든가 혹은 우리 교회에서 개최하는 공식적인 집회 시간에 대한 관념이 희박합니다.
도리어 사회생활에 대한 관념과 교회 생활에 대한 관념을 비교해 보게 될 때 흘러가 버리고 말 사회생활에 대한 관념이 영원히 남아져야 할 교회생활에 대한 관념보다도 앞설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여기에는 문제가 일어나고 병폐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팎에 대한 문제를 여러분들이 확실히 가려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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