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해 주고 - 김환기 세계일보 논설위원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해 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옥수수 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도종환의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중에서).
저세상으로 먼저 떠난 아내를 묻고 돌아온 시인의 쓰라린 회한이 묻어난다.
수의 외엔 해 입힌 옷이 없는 아내에게 시인은 한없는 미안함을 느끼고 용서를 구한다.
죽은 자의 마지막 가는 길에 입혀 보내는 수의. 고인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전통사회에서 한국인만큼 죽음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오랫동안 철저하게 준비하는 민족도 없었다.
예전 노인들은 미리미리 수의와 관을 장만했다.
신들이 하늘로 돌아가 쉬는 달이라는 윤달은 수의 만들기의 제철이었다.
신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웠기에 그때를 기다렸다.
할머니가 동네 아낙네들을 불러 모아 식사를 대접하며 수의를 짓고는 흐뭇한 표정을 짓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을 최대의 불효라고 한다.
안중근 의사는 부모보다 먼저 죽었다는 점에서 ‘불효자’이다.
한일병탄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뤼순 감옥으로 송치된 안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어머니가 손수 지어 보낸 수의를 입고 순국했다.
안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라고 편지에 적어 보냈다.
“이 옷을 입고 잘 가거라”라고는 했지만 아들이 입을 수의를 지으며 어머니는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흘렸을까.
세월호 침몰 사고로 숨진 안산 단원고 2학년 고 정차웅 군 유족이 장례비용 전액이 국가에서 지원됨에도 가장 싼 장례용품들을 선택해 감동을 주고 있다.
41만 6000원짜리 수의와 27만 원짜리 관으로 장례를 치렀다.
장례식장에서 가장 비싼 최고 등급 수의의 가격은 400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정군 아버지는 국민의 세금을 함부로 낭비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정군은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준 뒤 시신으로 발견됐다.
의로운 행동에 감동한 사람들이 의사자 지정을 위한 청원운동을 벌이고 있다.
“유족을 보니 위급한 상황에서도 친구를 먼저 구하려 한 정군의 용기가 이해가 간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간소한 수의 때문에 또다시 국민의 머리가 숙여진다.
정군의 최하등급 수의야말로 진정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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