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1.3.7(일)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 전본부교회.
042-187 종교는 오늘을 극복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에 있어서 희생하라고 강조합니다. 자기 자신을 부정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런 것은 현실 생활권내에서 그 누구도 환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부정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스스로 긍정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인데도 불구하고 그 본성을 무시해 버리고 그것을 극복하라고 강조하는 것은 역리적인 수단과 방법이요 역리적인 교훈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것을 왜 따라가야 되느냐? 미래는 현실로 말미암아 계승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하는 터전으로 말미암아 계승되기 때문입니다.
* 여기서 현실을 극복하려는 자리는 좋은 자리가 아닙니다. 현실에서는 비참한 자리입니다. 그런 비참한 자리에서 보다 더 가치적인 내용을 추구하는 인연을 통해서만 미래는 계승되는 것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의 생활을 위해서 사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없는 것입니다. 그저 오늘 먹고살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여 내일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동물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로써 만족하고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끝장을 보는 거예요.
하지만 사람이 귀하다고 하는 것은 그 환경의 물결에 휩쓰려 흘러가는 생활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서 그 물줄기의 원천을 찾아 거기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고 싶어하는 본연의 욕구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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