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8.16(일) 전본부교회. 해방과 우리의 책임.
033-220 타락한 우리 인간은 스스로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는 구속된 환경에서 지금까지 살아왔고 현재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생활은 개인을 통해서만 해 나온 것이 아니라 역사 시대를 통해서 지금까지 계속되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개인의 해방을 추구해 나왔지만 스스로 해방되었다고 한 사람은 아직까지 한 사람도 없습니다.
* 이러한 모든 사연들이 무엇 때문에 있게 되었느냐 하면 타락으로 말미암아 있게 됐습니다.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무한히 뻗어나갈 수 있는 자유의 천국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방으로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자유의 환경을 잃어버린 것이 바로 타락이 가져다준 보응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유의 천국을 잃어버리고 사방이 막힌 구속의 생활권 내에 떨어진 것이 타락이라는 것입니다.
033-222 이러한 역사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하나님이 계시는데 왜 이와 같은 섭리를 하시는 것이냐? 그것은 지금 인간들이 가고 있는 행로를 그냥 그대로 연장시켜서 그들이 바라보는 소망의 세계로 끌고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종말시대에 이르러 한꺼번에 인류를 돌아서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며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과 같은 환경이 벌어지는 것도 우리 인류를 비극의 세계로 몰아넣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소망하는 모든 외적인 요건을 끊어 버리고 하나님을 중심한 내적인 세계로 돌아설 수 있는 한 때를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 역사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033-224 인간은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이 해방을 맞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노력해 봤지만 그러한 환경도 내용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만을 중심 삼고는 해방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를 중심 삼아야 될 것이냐? 인간이 아닌 누구를 중심 삼아야 되느냐? 신을 중심 삼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이 있다면 대행이지만 신이 없다면 절망입니다.
어떤 정치가 혹은 위대한 성현 또는 위인이 인류를 수습하기 위한 새로운 사상과 주의를 제창하려 한다면 인간의 힘만 가지고는 안 될 절망의 자리에 있는 인간을 위해 가상적인 절대적인 힘의 주체라도 끌어들여야 할 시점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이 없더라도 인류를 더 이상 절망의 환경, 구속의 환경에 두어서는 안 되겠기에 인류를 그러한 환경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기 위해서 어떠한 절대자의 개입이 필요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신이 없더라도 가상적인 신을 세워서 그 신을 바라보는 사람이나 나라는 천국으로 나갈 것이요 보다 나은 새로운 본연의 곳에 접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없더라도 가상적인 신이라도 주장하여야 할 시점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때에 신이 있는 것을 확실히 아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그러면 그것을 책임지고 세계 앞에 있는 힘을 다하여 외쳐야 할 것이 아니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033-226 통일교회는 이 절망의 한계점에서 신음하고 있는 세계의 군상을 앞에 놀고 무엇을 할 것이냐? 통일교회가 인류 앞에 제시해야 할 것은 신이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진짜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 하는 문제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 내가 하나님을 진정 아느냐, 내가 신이 있는 것을 결정적으로 깨달았느냐, 내가 생활 전체를 장악하고 생사지권과 모든 전체를 좌우하시는 그런 분을 진짜 알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거로부터 우리가 살아오는 생활은 물론 현재의 우리 자체도 알고 있고 미래의 우리 운명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무지하기 때문에 자기가 가야 할 최고의 운명길을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타고난 팔자가 있는데 그 팔자의 길을 가지 못하고 누릴 수 있는 복이 있는데 그 복을 다 누리지 못하고 절망의 환경에 싸여 스스로를 망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것을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전후좌우의 운명을 다 알아 가지고 우리의 운명길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는 분 즉 절대자가 있다면 그분을 알고 그분과 관계를 맺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033-227 오늘날의 우리는 타락한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혈통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활적으로나 인습적으로 그런 관념에 젖어 스스로 모든 소망을 구속해 버릴 때가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내심으로는 내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절규하며 환경을 극복하고 타개하여 새롭게 움직여 나가기를 재삼 재촉하지만 그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습관 또한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습관성을 타개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생활환경이 우리를 얽어매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습관에서 어떻게 벗어나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역사적인 위인이라든가 성인들은 그 시대에 구속되고 포위되어 있는 환경을 벗어나서 미래의 세계관과 생활관을 중심 삼고 나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생명을 걸고 투쟁하였습니다.
* 이런 심각한 자리에 있어서 역사를 주고 세계를 주고서라도 찾아야 할 하나님, 어떤 수고를 하더라도 어떤 몸부림을 치더라도 어떤 고통을 당하더라도 반드시 찾아야 할 하나님, 그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
033-229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를 따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문제의 해결 방안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 하는 문제를 갖고 왈가왈부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신다! 틀림없이 계신다!"라고 확신할 때 여기에서부터 해결 방안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실제로 계시니 그로 말미암아 이렇게 해야 된다고 해야만 바로 해방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내 개인은 물론 내가 그러니 당신도 그래야 된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 통일교회가 주장하고 나서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다, 안 계시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실 것이다" 하는 것도 아닙니다. "계실 것이다"라고 추측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 우리의 주장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설명에 앞서서 하나님은 틀림없이 계시다는 거예요.
033-230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느냐? 세계를 품고 세계를 부활시키기 위해 수고하고 계십니다. 수고를 하시는 데는 세계만을 위해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수고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각하는 것이 세계의 그 무엇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바라시는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은 보다 강한 개인이요, 이런 무리가 있다면 이는 보다 강한 무리가 아닐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돌아가서 하나님이 계시느냐? 만약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세계가 아무리 해방되기를 고대를 하더라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참된 종교란 무엇이냐? 참된 종교는 가공적인 이상을 소개하는 것보다도 가공적인 인류애를 설명하는 것보다도 본연의 문제에 들어가 가지고 인간들이 절대로 부정할 수 없도록 신에 대한 인식을 그 무엇보다도 강하게 심어 줄 수 있는 종교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종교입니다. 그 이상 참된 종교는 없습니다. 그 가치는 오늘날 이 세계에서 가장 귀하다고 하는 것을 천 개 만 개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 신의 실존에 대한 자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으로부터 역사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심정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보다 고차적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도 모르는 세계에서는 이 말이 미친 사람들이나 하는 말로 들린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도 모르는데 하나님의 심정을 어떻게 알겠어요? 이 말 자체가 하나님이 계시고 안 계시고를 따지는 차원을 넘어선 것입니다. 심정 문제라는 것은 생활권 내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실제로 하나님을 알고 있느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아느냐 하는 것입니다. 알아요, 몰라요? 안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 그러니 문제는 신에 대한 인식입니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계십니다. 천국은 무엇이냐? 통일교회에서는 믿음의 천국을 말하지 않습니다. 侍義를 말합니다. 모심으로 救援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모르고서 모실 수 있어요?
* 여러분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하루에 몇 번이나 自覺합니까? 24시간 가운데 몇 번이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느낍니까? 모심으로 구원을 받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24시간 가운데 한두 시간 정도 모셔 가지고 되겠습니까? 空氣보다도 切迫하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입니다. 물보다도 切迫하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입니다. 밥보다 더 귀한 것이 하나님이에요. 그런데 여러분에게 그렇게 느껴져요?
033-232 여러분은 기독교가 왜 망해 가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어 보십시오. 어디에 갈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오고 갔습니다. 전후좌우의 모든 행동 일체를 자기의 입장에서 뜻의 길을 찾아간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 결부시켜서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초대 기독교가 어찌하여 뿌린 공로에 의하여 멸매맺을 수 있는 중세 시대에 들어가서 망하고 말았느냐? 그들에게 신은 머리에밖에 남아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믿던 신은 생각의 신으로만 남아졌던 것입니다. 사실적 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033-235 광부가 광맥을 찾기 위해 나섰다가 기진맥진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러 곡괭이질을 한 번만 더 하면 나자빠질 순간이라도 열 번만 더 파면 틀림없이 노다지가 나온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곡괭이질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죽을 지경이라 해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어디에 있느냐? 여러분 자신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안다면 보따리를 싸야 됩니다. 시집을 가든가 장가를 가든가 이사를 가야 된다면 거기에 대한 준비를 해야 되는 것처럼 준비를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삿짐을 싸 가지고 갈 준비를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순간이 올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그냥 그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망해 가는 세상의 더러운 먼지를 전부 다 털어 버리고 침을 뱉고 나는 가겠다 하는 마음으로 보따리를 싸 가지고 새로운 세계로 갈 준비를 하는 생활이 신앙생활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말입니다.
그래, 신이 여기에 살려고 하겠습니까? 신이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서 그냥 살려고 하겠냐 이 말이에요. 그러니 보따리를 싸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인연을 끊어야 되는 것입니다.
033-237 습관적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교회나 들락날락하면서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걸리는 것입니다. 40일 전도를 하라고 했는데 안 했으면 걸리는 거예요. 참여하지 못하면 걸리는 것입니다. 이 길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걸리는 것입니다. 가정을 하나님 앞에 바치면서 가지 않으면 걸리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들딸까지도 다 하나님 앞에 바치지 않으면 걸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도 복귀 섭리를 하시는데 6천 년이란 세월이 걸린 것입니다.
* 그러면 "해방과 우리의 책임"이라고 했는데 그 해방의 기점이 무엇이냐? 신이라는 것입니다.
* 계시다면 어떻게 계시느냐? 부모로 계시다면 어디에 계시느냐? 그 신과 나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이러한 것들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033-241 아담 해와가 타락한 것이 무엇이냐? 그들이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물어보았다면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물어보는 것이 책임분담 5%예요. 물어보는 것은 자유입니다. "천사장이 이러고저러고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하고 물어봐야 했습니다. 그랬으면 하나님이 답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물어보지 않고 橫的關係를 맺어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물어보지 않고 행동했기 때문에 문제가 벌어진 것입니다. 언제든지 그렇습니다.
* 원리라는 말은 공식이라는 말입니다. 원리가 뭐냐? 원칙적인 이치지요. 그러면 원칙적인 이치는 뭐냐? 공식입니다. 그렇지요? 이 길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길을 가야 하고 가려면 믿음의 아들딸을 세워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아담 가정의 여덟 식구를 전부 잃어버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과 해와 즉 부모를 중심 삼고 세 아들딸을 잃어버렸으니 이 세 아들딸을 찾아 가지고 돌아가야 됩니다. 여기서 떨어졌기 때문에 다시 이 자리까지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곳이 바로 장성기 완성급입니다.
그러면 장성기 완성급에서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실체기대를 복귀해야 됩니다.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복귀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 권내에 들어가야 됩니다.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는 권내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메시아를 맞이해야 원죄를 청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원죄 청산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선생님이 어떤 조건을 중심 삼고 축복해 줘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축복식 때에 성주를 마시는 것이 원죄를 청산하는 의식인 것입니다.
* 그러므로 믿음의 기대를 중심 삼고 실체기대를 통과해서 메시아르 위한 기대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무엇이냐?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내가 메시아를 위해 세우는 기대이지 메시아가 나를 위해 세우는 기대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밤에는 좋아하고 낮에는 싫어하고 이것은 좋고 저것은 싫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 데나 들여보내도 감사히 갈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꺼떡거리면서 선생님이 지금 어떻고 어떻다고 하며 선생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사람은 귀신이요 도깨비지 뭐예요? 그것이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담 해와도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해서 타락을 했는데 선생님이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하면 복귀될 것 같아요? 그런 놀음에 춤추는 선생님이 아닙니다. 그런데 별의별 것들이 다 와서 신경 쓰이게 합니다. 두고 봐요,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그러니 하나님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을 아는 데에 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해 일해서는 안 됩니다.
*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했으면 자신이야 망하든 흥하든 개의치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을 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그런데 무슨 조건이 그렇게 많으냐는 것입니다. 말은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결국은 자기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그렇지 않아요?
033-243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면 하나님을 진짜로 알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확실히 알아 가지고 나는 그분을 위해서 태어났고 그분을 위해서 산다면 불평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세계 복귀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계가 문제인 것입니다. 나 하나 죽고 살고 통일교인 몇 명 죽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 선생님은 삼천만 민족에게 별의별 규탄을 다 받고 별의별 욕을 다 먹었어도 끄떡없는 사람입니다. 세계 인류 전체가 나서서 통일교회 문 선생을 쫓아내겠다고 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끄떡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그런 것은 각오한 것입니다. 지금 그런 때가 왔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보다 더한 때가 와야 합니다. 빨리 이러한 때가 지나가고 그 이상의 것이 있는 때가 와야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초반전입니다.
033-245 내가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랐다면 왜정 때부터 감옥살이를 하고 이북에서는 물론 남한에 내려와서까지 감옥살이를 하면서 별의별 놀음을 다했을 것 같아요? 趣味 삼아서 監獄에 들락날락하는 놀음을 할 것 같아요?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기 좋은 일,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이런 놀음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바보나 천치는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똑똑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가시는 길이 얼마나 험한지를 알았기 때문에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괜히 "이러구 저러구" 입을 벌린 적이 없습니다. 밥 먹는 입으로 불평하고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 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통일교회의 방침이 아닙니다. 그러는 사람은 가면 갈수록 망하게 됩니다.
* 이제 내 나이 50이 넘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같은 젊은 사람한테 질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뜻을 이루기 전에 지칠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어떤 입장에 계신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여러분은 다를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부 이 뜻길에서 떨어진다 해도 나는 떨어질 수 없습니다. 나만은 절대 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세상으로 흘러가고 싶으면 이 길에서 떨어질 수도 있는 자유가 나보다 많겠지만 나는 그 길을 홀로 나가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 중에 누구는 뭐가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전부 다 남의 집 사람들입니다. 자기 집에 어려움이 있는데도 자기 집을 헐고 뜯고 해서 자기만 편안히 잘 먹고살려고 하는 놈들이라는 겁니다. 교회를 팔아먹는 사람들은 도둑놈들입니다.
033-247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진짜 안다면 "힘들다, 뭐가 어떻다, 내가 없으면 딴 사람이 하겠지" 하는 그런 구경꾼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자손들이 좋은가.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는 것은 자기를 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그런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아느냐는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이 계시는지를 아느냐는 거예요.
* 여러분은 남들보다 무엇이든 더 나아야 됩니다. 그래야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033-249 그러므로 여러분이 진짜 하나님을 알고 싶으면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구역질을 해서 여러분들에게 먹으라고 해도 먹으라는 것입니다. 먹고 나서 죽나 보라는 것입니다. 그 맛이 어떤가 보라는 거예요.
* 믿을 수 있는 것은 누구나 다 믿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어야 충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의 기도 제목 중에 중요한 하나는 "나에게 믿음을 주시옵소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나에게 불신의 조건만 가져다 줄 뿐이고 하늘을 假裝해 가지고 "나를 믿으면 하늘이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끝까지 믿고 나가면, 끝까지 내가 그렇다 하면 너도 하나님을 소개해야 할 것이다" 하는 신앙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위장전술이라는 것은 사실 앞에는 패배하는 것입니다. 끝에 가서는 판가름이 납니다.
* 그런데 여러분은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 하면서도 선생님의 말을 안 듣습니다. 그래 왜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안 하는 겁니까? 왜 안 해요? 두고 보라구요. 저나라에 가서 하늘의 법도에 걸리나 안 걸리나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못 믿겠으면 목을 칼로 찔러 죽어서 당장 알아보세요. 내가 거짓말을 했나 참말을 했나.
유 협회장도 영계에 가 보니까 그것이 실감이 났던 모양이지요? 지상에서 같이 살다 보니 습관이 되어서 친구 같았겠지요. 말로는 선생님 같이, 부모 같이 대했지만 그것을 말뿐이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처음 만난 그때보다 더한 마음을 가지고 모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본이 되어 가지고 전통을 세우기를 바란다면 군말이 없다는 거예요
033-254 그러면 문제는 어디서 귀결되느냐? 하나님을 확실히 아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확실히 아느냐는 것입니다. 만약에 아들이 집을 나가서 틀림없이 죽게 된다는 자리에 들어갔다고 하면 그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悽慘하겠어요? 여러분이 그 이상의 슬픔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을 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알기만 한다면 굳이 교회에 오라 마라 할 필요도 없습니다.
033-255 하나님을 안다고 해도 하나님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과 같이 생활하는 맛을 보았느냐? 그런 맛을 본 사람은 돈이 아니라 매일 고기 실컷 먹고살도록 해 준다 해도 거기에 안 갑니다. 그것은 전부 다 흘러가는 것입니다.
* 우리는 죽을 때까지 蕩減해야 됩니다. 苦生으로 시작한 사람은 고생으로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욕을 먹고 핍박을 받더라도 가정적인 터전이 있는 사람들은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처음 출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끝을 맺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피땀 흘리며 살자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나라를 굴복시킬 때까지 가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은 억천만금이 있다 하더라도 여러분을 편안한 자리에 세우지 않을 것입니다. 들이몰 것입니다. 피땀으로 뿌렸으면 피땀으로 거두어야 되는 것입니다. 시작했으면 시작한 것으로 열매를 맺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033-257 그러면 복귀하는 데는 그냥 복귀할 수 있느냐? 싸우지 않아도 그냥 복귀돼? 사탄을 찾아 사탄을 쳐서 이기고 넘어야 복귀가 되는 것이지 그냥 가만히 있어 가지고 개인이 복귀가 되겠느냐 말이에요. 가정이 가만히 있으면 가정이 그냥 복귀가 돼요?
033-258 통일교회는 미스터 문이라는 사람을 중심 삼고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중심 삼고 출발한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가 證明할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인류와 더불어, 하나님과 더불어 출발한 교회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아는 교회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그냥 아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같이 생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심정이라는 말을 할 수 있어요? 그러므로 이것은 생활을 중심 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과 같이 살고 있어요? 그렇다면 여러분이 "가고 오고 오늘은 좋겠다 나쁘겠다" 하는 것을 어느 정도 鑑別할 수 있어야 됩니다. 鑑別하면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모심의 생활을 해야 됩니다. 언제나 마음놓지 못하고 모시는 생활을 해야 돼요.
어디를 갔다 와도 보고해야 되고 안 가더라도 집에 있다고 보고해야 됩니다. 잠에서 깼으면 깨었다고 보고해야 하고 어디를 가겠으면 다녀오겠다고 보고해야 됩니다. 밥을 먹을 때도 밥을 먹겠다고 보고해야 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대할 때에도 "야, 맛있다" 하고 개처럼 정신없이 먹을 것이 아니라 "아버지, 제가 이런 음식을 아버지께 준비해 드리고 먹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니 어쩌면 좋습니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먹으라고 하는 명령이나 그런 느낌이 전해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느끼면서 살아야 됩니다.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033-258 지금도 선생님은 함부로 살지 않습니다. 어디에 가더라도 그렇고 오더라도 그렇습니다. 어디에 나가서 소변을 볼 때도 사탄의 자식들이 소변을 보는 곳에서는 보지 않습니다. 그런 곳을 피해서 깨끗한 곳을 찾아다닙니다. 어디에 가서 앉더라도 제일 높고 깨끗한 자리를 택해서 앉으려고 합니다.
이렇듯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함부로 못 사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서 앉더라도 반드시 청소를 하고 앉습니다. 이런 생활은 감옥살이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왜 그런지 모르게 사람들이 자꾸 보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혼자 있는 조용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 것이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의 바람직한 생활인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어떤 곳을 가려할 때 무엇이 앞을 막습니다. 하나님께서 막지 않으면 마음이 막는 것입니다. 마음은 벌써 어디를 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을 예상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마음이 반기는지 안 반기는지 하는 것을 늘 느끼면서 살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얼마나 아느냐 하는 것입니다.
* 여러분들의 가정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가 없으면 내가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서로가 그렇다는 거예요. 한스런 복귀섭리역사를 두고 볼 때에 선조들이 생명과 재산을 다 투입해서 피어린 투쟁의 노정을 거쳐 가지고 남아진 제단 위에서 하나의 법도에 의해서 빚어진 것이 너와 나, 그대와 내가 아니냐, 결국 가정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는 가정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 가정을 발판으로 삼고 남자는 오른발 여자는 왼발로 딛고 꼭대기에 올라서서 호령하고 싶어하시니 하나님이 행차하실 때 수레를 타고 오신다면 수레바퀴를 받들 수 있는 머리가 되고 손이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천지는 요동하더라도 우리 가정만은 절대로 요동할 수 없다는 기반을 갖추어야 할 것이 축복받은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033-261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정에서 우닥딱딱 싸움질이나 하고 그래요?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싸움을 하더라도 뜻을 위해서 해야 됩니다. "당신이 망하는 건 좋지만 나까지 망할 수는 없다. 나는 오직 뜻을 위해 이 길을 가고 하나님을 위하여 일을 해서 실적을 쌓겠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럴 때는 남자의 권위를 갖고 일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서운 성질을 가지고 아내를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하늘이 보내 준 사람으로 생각하여 남편을 하나님 이상으로 사랑하게만 되면 틀림없이 가정에 평화가 온다는 것입니다. 아내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남편은 교회의 책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절대로 교회의 책임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렇습니다. 어머니가 "우리 선생님은 이런 남자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선생님은 그건 이렇기 때문에 이래야 되는 거라고 합니다. 체면을 잃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연이 전부 다 엉클어져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중심인 주체라면 아내는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주체인 남편이 매를 맞는다면 그 아내는 아내의 자리를 밟고 넘어서서 남편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몸을 희생시키더라도 남편을 귀중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죽기 전에 아내가 먼저 희생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천도입니다.
그렇다고 아내를 함부로 희생시킬 남편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남편은 아내를 대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자기 생명을 바쳐 보호해야 할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이런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가정에서는 할 일이 많습니다. 생활 속의 모든 사소한 일 혹은 몽시 하나라도 둘이 의논하고 분석 비판해야 됩니다. 우리 가정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이런 것을 의논하여 어떤 결론이 확실하다면 둘이 손을 붙잡고 "아버지여! 저희 가정에 이런 사연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신의 축복을 받은 가정으로서 훗날 민족을 대신한 깨끗한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저희의 나이 몇 살 때까지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라고 기도해야 된다는 겁니다.
* 暗示가 오기 전에 夢示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기도하게 되면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뜻을 分析해 가지고 기쁨을 얻기까지는 생명을 기울여 가지고 정성을 들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느낌이 온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려고 할 때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으면 벌써 기분이 안 좋습니다. 육감이 나를 헤아려 준다는 것입니다.
033-262 선생님이 길을 가려고 차를 척 타고 나서면 벌써 안 좋은 느낌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코스를 달리 잡습니다. 그런 靈感이나 體感이 옵니다.
체감이라는 것은 體恤的인 신앙생활에서 생깁니다. 여러분이 길을 가다가 전봇대고 무엇이고 간에 그것을 붙잡고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때를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때를 몇 번만 놓치게 되면 그런 기회는 나에게서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놓쳐 버리면 그것은 절대로 나에게 플러스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의 힘이 되어서 나를 밀어젖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체휼 신앙을 하는 데 있어서 暗示란 무엇이냐? 여러분, 암시라는 것을 알지요? 어느 곳을 지나가는 데 복숭아나무 가지 위에 앉아 있던 새가 푸드덕 날아갑니다. 그러면 그 모습을 보고 갑자기 옛날에 있었던 어떤 사건이 연상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제3의 조건을 통하여 새로운 무엇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절대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때 느껴진 첫 감정은 언제나 키워 나가야 됩니다. 어디를 가다가 어떤 사람을 척 볼 때 섬뜩하게ひやっとする;ぎょっとする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지금 살인을 하러 가거나 살인을 하고 오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오는 느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예감, 그러한 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키워 나가면 暗示的인 내용을 빨리 알 수 있는 것입니다.
* 제3의 조건을 통해 실상을 感知할 수 있는 감각이 銳敏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선악을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사탄이 오는지 선한 천사가 오는지 그 사람이 악한 사람인지 선한 사람인지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럴 수 있게 해 주는 암시가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영적 생활을 하게 되면 틀림없이 알 수 있습니다. 안테나가 높아진다는 말입니다. 또한 몽시를 통해서 다음날 되어질 일을 전부 다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잠자는 시간에 엄청난 입체적인 내용이 벌어집니다. 그러니 몽시를 받으면 진지하게 해석해 보아야 됩니다.
성경의 요한 계시록은 요한이 받은 몽시입니다. 그러한 몽시와 계시를 통하여 영계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계시를 우리가 해석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활 속에서 되어지는 상황을 관찰해 보면 자기 마음에 느낌이 온다는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033-262 협회장은 선생님으로부터 그런 지도를 많이 받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으면 내가 협회장에게 미리 이야기합니다. "오늘 누가 올 테니까 맞을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온다는 겁니다. 그러면 협회장이 만나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대 기준을 중심 삼은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영계와 우리는 주체와 대상의 입장입니다. 그런 것이 없어 가지고는 큰일을 못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몽시 가운데 되어진 일을 연구해야 됩니다. 연구하고 분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 선생님은 어떤 사람이 교회에 쓱 들어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을 보면 생각지도 않은 말이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옵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 자신이 그러지 않는데도 "이놈의 자식, 나쁜 자식 같으니라고"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것은 내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입니다.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면 수개 월을 못 넘어갑니다. 얼마 안 가서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 선생님이 무엇을 하자고 하는 것이 땅에 안 떨어지기에 이것에 대해 순응하는 가정들은 세계에 있어서 존대함을 받지만 순응하지 않는 가정들은 심판을 받습니다.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서부터는 자기를 잘 알아야 됩니다. 자기를 알지 못하면 혼란이 벌어집니다. 나는 어떠한 자리에 있느냐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심부름할 사람인지 공적으로 쓰일 사람인지 주위의 어떠한 자리에 서야 될 것인지를 잘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란이 벌어집니다. 그것도 모르고 함부로 날뛰다가는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맨 밑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모든 영광을 갖다 주더라도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당신이 나보다 더 갖고 싶어하시니 당신이 받으소서. 나는 당신이 그것을 받으시고 나 이상으로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서 기뻐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해야 된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033-268 여러분은 당장에 좋다고 해서 좋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장에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 삼고 좋고 나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만으로 계속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나쁜 것이 나쁜 것만으로 계속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나님을 중심 삼고 볼 때에 좋을 때는 탕감 역사가 없는 때라는 거예요. 그러나 탕감 역사를 해야 할 때에는 자신이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사랑받고 난 후에는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물이 되려면 죽음의 골짜기에 가서 피를 뿌려야 되는 겁니다. 그 피를 밟고 넘어서야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올라갈 수 있는 겁니다. 떨어진 이 세상을 박차고 올라가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033-269 해방하는 데는 총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 삼은 사랑으로 해야 됩니다.
* 여러분이 생활환경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면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전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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