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 민주 세계

맥아더, 1951년 4월 19일 오전 상하양원 합동회의에서 '침략자 중공을 응징'하자며 소신을 피력하였다.

true2020 2018. 3. 18. 10:30

▶ 남북이 갈라진 이유

- 해방 직후 기독교가 문선명 선생과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 투르만 대통령의 1951.4 맥아더 (Douglas MacArthur 1880.1.26~1964.4.5) 해임 

 

1951년 4월 19일 오전 상하양원 합동회의에서 '침략자 중공을 응징'하자며 소신을 피력하였다.

 

한국전쟁을 조속히 종결짓지 않으면 더 큰 전쟁을 면할 수 없을 것이며 한국전쟁을 조속히 종결시키려면 첫째로 압록강 피안의 적보급기지를 폭격하고 둘째로 중공에 대한 경제봉쇄를 실시하고 셋째로 미 해군으로 중국 봉토의 연안을 봉쇄하고 넷째로는 공군으로 중국 본토를 공격하고 다섯째로 타이완에 있는 국부군에 가해진 제한을 없애야 한다. 만주원자폭탄 투하와 장제스 총통 지휘하의 중화민국 국군의 지원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맥아더는 "공산주의의 뿌리를 뽑겠다"는게 목표였던 반면 트루먼은 정치가인지라 "제한전쟁"으로써 전쟁은 시작된 곳에서 맺어야 하고 얼른 전쟁을 종결지어야 정치적으로 안전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런 의견차로 결국 맥아더는 해임되기에 이르렀다.

 

*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웨스트포인트에서의 은퇴연설문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