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자녀. 2세

희진 님 (음력. 1955.6.30 ~1969.6.19)

true2020 2015. 8. 5. 12:24

- 문희진 음력 1955.6.30.~1969.6.19.  (양력. 1955.8.17.~1969.8.1.)

- 희진 어머니 김명희. 샐비어.  

 

1971.10.9(토) 국가와 우리의 사명.  중앙수련원.

- 전국 사업소장 수련회.

 

049-154 성진 어머니가 반대했기 때문에 그 터전을 중간에서 누가 이어받은 것이냐? 그가 희진 엄마입니다. 그 사람은 국경을 넘나들어야 했습니다. 마리아와 같은 사명을 가진 입장에서 예수를 밴 마리아가 그런 것처럼 희진이를 배 가지고 배가 이렇게 나왔는데도 밀선을 타고 일본으로 간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인연을 중심 삼고 뜻을 출발했던 것이 깨져 나가게 되었으니 새로운 인연을 중심 삼아 가지고 하나의 여성을 중간에 다리 놓아 가지고 그것을 이어받을 수 있는 터전을 가리지 않고는 살 길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대한민국에 요동이 벌어지고 있던 때입니다. 그때는 경찰에서 자꾸 사건 때문에 선생님을 부르게 되어서 내가 감옥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희진이 엄마를 밀선에 태워 일본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나는 감옥 길을 갔습니다. 성진이 어머니가 기반을 다 까먹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대상으로서의 가정 기반을 다 까먹고 나라를 다 까먹고 교회도 다 까먹고, 자식이고 뭐고 다 까먹었다구요. 자식을 키울 입장이 못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을 까먹고 나라의 기반까지 다 까먹어 버렸기 때문에 선생님이 감옥길을 가야 했던 것입니다. 좋아서 그렇게 했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원리의 길을 아는 사나이로서 가는 길은···. 

 

그렇다고 해서 내가 민족 앞에 몰리고 교회 앞에 몰리고 처자한테까지 몰렸다고 해서 "이놈의 나라야, 이놈의 교회야, 이놈의 여자야,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럴 수 있어요? 그렇게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해야 할 나라와 사랑해야 할 교회, 사랑해야 할 사람이지요.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 이상으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원수에게 공인을 받는 것입니다.

 

▣ 1961.11.1(수) 아버지의 영원한 유업을 상속받으라. 전본부교회.

011-246 희진의 잘못은 선생님께 보고해야 한다. 모두 관심을 갖고 길러야 한다. 그래야 여러분도 좋은 자녀를 낳을 수 있다.

 

여러분은 선생님의 가정을 인정해야 하며 그 가치를 아는 입장에서 자기 가정을 세워야 한다.

 

하늘이 소망하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여러분이 잘못하면 그 영향이 여러분의 후손에까지 미치게 된다.

 

희진은 사탄의 총공격 대상이다. 고로 학교 갈 때도 데리고 다녀야 한다.

 

▣ 1965.10.12(화) 전본부교회. 성지를 세계적으로 택한 이유.

- 제1차 세계 순회 귀국 후 인도자 회의.

 

015-228 1960년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넘고 제2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니 이것이 가정적인 십자가다. 7년 기간이란 가정적인 제2십자가를 승리의 기대로 세워야 할 기간이다. 7년 이후에는 제3의 십자가가 있으니 그것이 성진, 희진을 화목한 가정으로 세우는 것이다.

 

* 성진과 희진이를 잘 인도하여 각자 기쁨으로 결혼할 수 있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1967.12.26(화) 대전교회. 축복가정의 위치와 사명.

- 72가정 부인회 집회.

 

019-070 선생님이 3가정 축복 전에는 성진, 희진과 함께 있지 못했다. 그러나 이 3가정이 아버지와 일치되는 기준을 찾아 세웠기 때문에 성진과 희진을 하늘 앞에 찾아올 수 있었다.

 

식구들도 마찬가지로 믿음의 3자녀와 12가정을 찾아 세워야 한다.

 

▣ 1969.6.8(일) 불쌍한 복귀의 역군들. 전본부교회.

023-291 또 우리 성진이와 희진이는 복귀 역사를 중심 삼고 보면 성진이(1946.3.1.~)는 아담 형이요, 희진이는 예 수형입니다. 그래서 희진이를 일본에 가서 낳았습니다. 일본에 갔다 와야 됩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선생님은 그러한 일을 다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꿈같은 사실입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복귀역사를 가려 나오기 위해서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고 피어린 투쟁의 역사를 배후에서 거쳐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 1969.6.8(일) 생애에서 가장 귀한 것. 전본부교회.

- 주일예배 후 말씀.

 

023-312 선생님의 역사 노정에는 비참함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소문난 것은 전부 다 성진이 어머니 때문입니다. 성진이 어머니 때문에 통일교회에 이러한 비참한 역사가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과거로 인해 선생님은 자식을 낳았어도 자식을 사랑할 수 없는 입장이 되고 가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가정을 사랑할 수 없는 입장이 된 것입니다. 왜? 기독교가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를 기반으로 가정을 세워 사랑해야 하는데 그 기반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한꺼번에 무너진 자리에 세워 놓고 다시 수습해 나오는 것이 복귀의 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1960년에 아담 가정의 세 아들딸의 입장에 세워 세 가정을 축복해 준 다음 미국에 갔다 와서 비로소 성진이와 희진이를 한 집에 데리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을 세워 놓지 않고서는 아들딸을 사랑해서는 안 되고, 대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복귀 역사는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가정들도 아들딸을 낳았다고 해서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선생님과 마찬가지 입장이기 때문에 믿음의 세 아들딸을 세워서 아담 가정의 기준을 복귀하지 못해 가지고 자기의 아들딸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축복가정도 선생님이 이 길을 나섰을 때와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믿음의 아들딸을 빨리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이 한 가지 원칙만은 해결지어 놓고 축복해 주어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023-315 천사장은 아담 해와가 창조되는 그 시간서부터 그들이 시집 장가갈 때까지 모시고 봉사하고 받들어야 했습니다. 이 복귀의 과정이라는 것은 맨 처음 아담 해와가 창조되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천사 세계에서 아담 해와를 받들지 못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그 한을 재차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믿음의 세 아들딸을 세워 그들이 여러분의 애기를 복중에서부터 모시는 자리에 서지 못하면 천국에 못 갑니다. 여러분의 아들딸만으로 그냥은 천국 못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에 대한 탕감조건을 세워 놓고 축복을 받아 아들딸을 낳으면 그 아들딸에게는 메시아가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못하면 천국 가기 전에 딱 걸리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1960년대에 성진, 희진, 예진, 효진을 중심 삼아 가지고 복중에서부터 복귀해 나옴으로 전부 다 그런 조건을 다 세웠습니다. 그때에 여러분들 미역국 먹었지요? 그리고 우유도 먹고 밥도 먹었지요? 그게 다 조건입니다. 왜 그렇게 했는지 여러분은 몰랐을 것입니다.

 

▣ 1969.8.3(일) 전본부교회. 뜻과 우리의 책임.

- 희진님 승화 1969.8.1.

 

024-173 선생님은 희진이의 죽음에 대해서 조금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이 길을 출발할 때 하나님 앞에 서서 내 마음속에 칼을 꽂고 맹세한 기준이 있습니다. 내가 생명을 잃고 쓰러지는 것은 이미 각오한 바입니다. 지금 생명이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가정을 가진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또 그 애기 앞에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어린 소년의 몸으로 뜻을 위해서 간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도 받아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외국에서 때어나 외국에서 자랐습니다.

 

선생님이 일전에 말했듯이 이 뜻길을 가는 공식 노정에 있어서 제1차로 순교할 수 있는 사람은 통일교회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러한 사람을 찾아서 통일교회 역사에 길이길이 자랑하겠다고 했는데 그러한 일이 선생님의 가정에서 벌어졌던 것을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이것을 전통으로 이어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애기가 생각나서 눈물이 나오거든 여러분 가슴에 전통으로 간직하고 눈물을 흘리십시오. 선생님이 동정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 희진이가 선뜻 전도 사업을 나선다고 했기에 선생님은 수많은 우리 통일교회 청년 남녀들에게 민족 복귀라는 부과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피와 땀을 흘려 가며 활동하라고 명령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을 마음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예감이 이상하여 주의하라고 당부했는데도 결과가 이렇게 된 것에 대해서 우리 교회에 피해가 되고 선생님의 가정에 피해가 된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뜻을 위하여 왔으니 뜻을 위하여 깨끗이 잘 갔다는 것입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부모 앞에 효도할 수 있는 것은 그 아버이의 뜻을 받들어서 죽음길도 개의치 않고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호의 도리를 세워 가지고 국가의 운명을 개척해 가는 길 앞에 있어서도 죽음을 개의치 않는 것이 충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이런 문제를 자기 자신을 중심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하고 생각하게 되면 슬픔 같은 것은 다 잊게 되고 도리어 하늘 앞에 감사하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이 이러한 일을 하셔야 할 입장에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은 나보다도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하나님 앞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 가정에 그보다도 더 비참한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내가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면서 피를 토하더라도 이 일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이 더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024-175 선생님이 여기에서 바라는 것은 오늘날 온 세계가 다 함께 넘어가야 할 이러한 고빗길에서 우리 희진이가 하나님의 긍휼의 은사로 하나의 제물적인 조건으로서 받아질 수 있기만을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간 길 앞에 여러분이 느낀 마음을 다 모아서 추모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 가정을 두고 볼 때 그는 예수와 같은 입장이요 성진이는 아담과 같은 입장입니다. 이렇게 그는 장성기급에 있었기 때문에 제2차 7년 노정을 중심 삼고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모르는 배후에 있어서 천적인 섭리의 어떤 귀결점이 있다는 것을 선생님은 느끼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슬픔을 체휼하였고 일생에 있어서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말하지 못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잊을 수 없는 못 자국이 남이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거기에 대한 것은 강조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선생님의 가정에 대해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선생님은 그 이상의 어려운 시련이 있다 하더라도 가야 할 이 길을 갈 것입니다. 그것이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원동력이 되고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어떠한 사건이나 어떠한 환경을 거칠 적마다 나의 생애를 바쳐 투쟁해 나가는 데에 힘의 원천이 됩니다.

 

즉 어떠한 모진 투쟁의 과정에 있어서도 원수를 멋지게 갚을 수 있는 내일의 한 날을 위하여 싸워 나갈 수 있는 힘의 언천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치더라도 선생님은 지칠 수 없습니다. 내 신념이 그렇습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 수십 년 되었다는 사람들을 볼 때 지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당장 처치하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올 때가 많습니다.

 

하늘이 걸어온 비참한 길이었습니다. 타락 이후 6천 년 동안 원한의 길을 걸어오신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희망의 항구를 향하여 돛을 달고 출항할 수 있는 하나의 배를 만들어야 할 입장에 선 오늘날 한국 땅에 있는 우리들이 시간을 재촉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하고 모든 사명을 완결 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반대하는 입장에 서서 비판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을 많이 보아 왔고 많이 겪어 나왔습니다. 그럴 적마다 선생님은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굽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가슴에 잊을 수 없는 이러한 사건이 원수 사탄에 대하여 복수할 수 있는 힘의 동기를 가져다준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이후에 하나님의 뜻을 세워 나가는 데 있어서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볼 때 선생님은 하늘 앞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알고 통회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잃어버린 이스라엘에 대해서 연민을 가지고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이스라엘을 위해서 울라"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동정하는 입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고 여러분의 가정과 종족과 민족의 운명을 걸고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희진이를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여러분들의 마음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또 내가 여러분에게 늘 통고하는 사실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선생님보다 더 불쌍한 자리에 계시고 선생님은 우리 통일교회의 교인들보다도 더 불쌍한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이 있기 때문에 하소연도 할 수 있지만 선생님은 하소연할 수가 없습니다. 수많은 제자가 있고 따르는 사람이 많다 하더라도 선생님의 심정을 하소연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고빗길을 갈 때 아무리 지치고 어렵다 하더라도 홀로 묵묵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가득히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그러한 환경에서 싸움을 하며 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 1969.8.4(월) 전본부교회. 모심의 생활도 전통을 세워라.

- 지구장 회의.

 

024-181 희진이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의 길이 활짝 열릴 것이다. 선생님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고 각자 맡은 바의 책임을 다 하라.

 

▣ 1969.8.19(화)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전본부교회.

- 칠월칠석(음력 7월 7일) 특별 기념식.

 

024-241 제2차 7년 노정은 제2차 년도에 해당하며 희진도 제2의 아들이다. 여러분도 그러한 아들로서 하늘 앞에 연결되어야 한다.

 

희진은 예수가 마구간(외양간의 방언.)에서 탄생한 것과 같은 입장에서 태어났고 예수가 십자가의 노정을 걸었듯이 십자가의 노정을 걸었다.

 

* 희진은 얼마 전부터 원리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계몽 나가야 할 것을 주장했는데 그것을 나로서는 막을 길이 없었다.

 

희진이의 죽음으로 인하여 영계에 있는 모든 기독 신도들에게 해방의 길이 열렸다. 수많은 사람을 일선에 세워 오던 중 희진이가 제1순교자의 입장에 세워졌다. 나도 지상에서 희진이가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1969.10.4(토) 역사의 주역. 전본부교회.

025-237 2차 연도는 예수님적 해인데 선생님 아들을 중심 삼고 보면 희진이가 해당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책임을 못 하자 희진이가 걸려 넘어간 것입니다.

 

원래는 희진이가 전도하러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금년에는 전면적인 동원을 해야 하는데 식구들이 동원을 안 하니 선생님의 위신이 서지 않는다고 자신이라도 가야 되겠다고 해서 허락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지도해 나왔습니다. 그 대신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사탄을 넘어섰기 때문에 사탄은 아들딸을 겨누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가정에 있어서 희진이가 걸려 넘어간 것입니다. 이것이 이번 기간에 심각하게 기도한 내용입니다.

 

이것으로 예수는 30대에 있어서 영적 구원의 기반을 마련한 것처럼 희진이의 희생으로 청소년권내의 아이들까지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영적 구원의 기반을 넓혔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중심 삼고 재림부활할 수 있는 평면적인 혜택권이 넓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조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눈물을 흘리면 공적인 입장의 아버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껏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흘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희진이는 제물로 깨끗이 바쳐진 것입니다.

 

희진이는 일본에서 태어났습니다. 외적인 세계에서 태어나 외적인 세계로 깨끗이 갔습니다. 예수가 외국에 갔다 왔지요? 그러니 희진이도 외국에 갔다 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서 이런 역사를 엮어 가지고 복귀의 터전을 마련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만한 고충과 슬픔과 비운의 역사가 들어 있는지를 모를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선생님의 직계의 아들딸이 ㅗ디어 공동적인 운명으로서 한 구덩이에서 죽을 수 있다는 결의를 하고 틀림없이 나는 여기에서 살고 여기에서 죽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면 더 세밀한 이야기를 해 줄 것입니다.

 

어떤 영통인들은 희진이의 죽음을 두고 제2조상이 죽었다고 말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이 잘못하여 통일교회에 있어서 제2조상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1969.12.14(일) 전본부교회. 추수의 주인.

027-249 1969년도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렇게 우리는 심각한 입장에 섰습니다. 이러한 와중에서 희진이가 죽어갔지만 잘 갔습니다. 잘 갔습니다. 지상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소원의 날을 찾기 위해서 예수를 죽음의 자리에 내세우는 아버지와 똑같은 입장에 서게 된 것입니다. 원리적으로 꼭 들어맞습니다. 뜻을 위해서 눈물을 머금고 가야 되겠습니다.

 

지난 여름방학에 가정들을 전체 동원하라고 명령했지만 누가 동원되었습니까? 누가 동원되었느냐는 것입니다. 동원되지 않았기 때문에 희진이가 나섰습니다. "아버님의 말씀대로 아무도 따르지 않으니 나라도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을 했을 때 나는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희진이가 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3백 리 이상 먼 길을 보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역사적인 노정을 탕감하면서 풀고 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눈물 흘렸느냐? 한 방물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거리에서 난 사람은 불쌍합니다. 희진이도 예수님과 같이 거리에서 났습니다. 예수님과 똑같은 운명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0대에 민족으로부터 몰림 받는 자리에서, 이스라엘의 기반이 없는 자리에서 갔지만 희진이는 몰림 받는 자리가 아니라 기반을 가진, 부모를 중심 삼은 자리에서 갔습니다.

 

세례 요한과 더불어 요셉 가정의 반대를 받던 서글픈 자리의 예수, 몰리던 예수의 입장이 아니라 환영받을 수 있는 입장에서 갔기 때문에 잘 갔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예수의 청소년 시대의 한을 풀어 주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계를 중심 삼고 전체가 동원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970.2. 완전한 탕감. 구리 수택 통일산업.

- 제1회 협회 간부수련회.

 

029-212 그런데 선생님과 여러분이 하나되어 있느냐? 못 되어 있습니다. 먼 거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입장에서 다시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희진이가 간 것입니다.

 

선생님은 희진이의 그런 비보를 들었을 때 "아! 올 때가 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내 자식보다도 나라와 뜻을 더 받들어야 했습니다. 문제는 그것입니다. 그럴 때 슬퍼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면 전체가 허물어집니다. 탕감은 용서가 없는 것입니다.

 

▣ 1970.3.24(화) 복귀의 주류. 구리시 수택리 통일산업.

- 제3회 협회 간부 수련회 개회식.

 

030-242 성진 어머니가 반대 함으로 희진 어머니를 만났고, 희진 어머니가 반대하므로 효진 어머니를 만났다. 성진이는 타락한 아담 복귀 형이요, 희진이는 실패한 예수 복귀 형이요, 효진이는 완성한 아담 형이다. 효진이를 중심으로 흥진, 현진, 3아들이 있어야 한다.

 

▣ 1970.4.21(화) 축복의 관문. 중앙수련원.

- 777가정 약혼 집회 때.

 

031-091 선생님에게 있어서도 믿음의 아들딸이 완전히 세워지지 않았을 때는 성진이와 희진이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다.

 

믿음의 아들딸을 사랑했다는 조건이 있어야 한다.

 

 

▣ 1970.7.26(일) 뜻과 우리. 전본부교회.

- 7월 24일 타계한 유효원 전 협회장 장례 기간 중 하신 말씀.

 

032-297 지금은 요동하는 때입니다. 어느 해든지 4월부터 10월까지는 우리 협회에 있어서 문제의 기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유 협회장을 두고 염려했던 것입니다.

 

그는 희진이를 책임졌던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하나님이 바라는 기준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책임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유 협회장 가정이 하나님이 바라는 그 기준에서 희진이를 중심 삼고 모심의 생활의 전통을 세워야 할 책임이 있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희진이가 죽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전부 다 통회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염려한 것이 피를 흘려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032-300 여러분은 자기가 넘어야 될 탕감의 노정에서 그러한 일로 동요될 때가 많은데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것을 공적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작년에 희진이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여러분은 선생님이 섭섭함을 금치 못하리라 생각했겠지만 선생님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뜻을 중심 삼고 지금까지 엮어 온 역사 노정에 어린 슬픔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가 하는 방안을 모색하였던 것입니다.

 

요셉 가정을 생각하면서 우리 가정은 요셉 가정보다는 복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희진이가 간 것도 예수보다 복된 자리에서 가지 않았느냐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사고방식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설사 그것이 틀린 생각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님이 동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일이든지 자기를 중심 삼고 연결시키지 말고 공적인 기준을 중심 삼고 연결시키라는 것입니다.

 

1970.7.28(화) 생사의 한계. 전본부교회.

- 유효원 전협회장 정례식 후 말씀.

 

032-337 우리 가정에, 우리 부락에 천 사람 만 사람이 희생되는 한이 있더라도 혹은 애기들이 죽어 가는 일이 있더라도 슬퍼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그럴 때 오히려 인류를 위해서 역사적인 원한을 막아낼 수 있는 가정으로 서지 못할까 봐 염려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작년에 희진이가 갔습니다. 희진이가 전도 나가기 전에 원리 말씀을 다 듣고 하는 말이 "한국에 주님이 오시다니, 우리집에 그런 일이 있다니···"라고 하면서 마룻바닥에서 뛰며 좋아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때 "오냐, 내가 하나님 앞에 효도하지 못한 것을 희진이가 대신 효도하여 하나님이 보시고 위로받을 수 있겠구나, 네가 그런 마음 바탕이라도 가졌구나." 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작년 여름에 축복받은 가정 전체를 동원하라고 명령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축복가정 전체가 동원되지 못했습니다. 그때 희진이가 "식구들이 가지 않으니 나라도 가야 되겠다."고 하는 말을 내가 들었습니다. 그런 말을 남기고 떠난 뒤에 내가 식구들한테 "역사 시대에 한번밖에 없는 거룩한 이 시대에 하나님 앞에 제일 첫 번 제물 되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씨족은 복받는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런 일을 회상하면서 희진이가 갔을 때 "하나님이여, 우리 가정에서 그럴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은 내가 개인의 슬픔이 아니라 우리 가정의 기쁨입니다."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 가는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오늘날 이 스승이 가야 할 길은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피곤한 발걸음을 거두어 다시 몸을 수습해 가지고 내일의 민족과 내일의 국가와 내일의 세계를 염려하는 마음을 품고서 피곤한 무릎을 꿇고 호소하여야 할 사명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비가 오는 날이나 눈이 내리는 날이나 혹은 외로운 환경이 지나가기 전에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자리에 누워서 자는 것이 내 소원이 아닙니다. 앞으로 이루어야 할 역사적인 사명을 필생에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출발할 때의 결의를 아버지 앞에 민족과 더불어 다했다고 할 수 있는 그날에 있어서 과거를 뒤돌아보며 아버지 앞에서 "아버지, 내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부끄러움 없이 얼굴을 들고 아버지 앞에서 자연스러운 몰골로 호소할 수 있는 그 한마디를 하는 것입니다. 철들어서부터 지금까지 영어의 신세를 거치고 투쟁의 일생을 거쳐오면서 이것을 신조로 삼아 왔던 것을 여러분이 이날을 기해 마음 깊이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 1967.12.27(수) 종족적인 메시아로 서라. 대전교회. 

- 124가정 부인 총회. 

 

158-177 선생님도 원칙적으로 보게 된다면, 선생님 가정에 있어서 성진이가 있고 희진이가 있지만 말이에요, 그 애기들을 대해서 선생님이 사랑 한번 못 해 봤어요. 학교를 다녀도 내가 공책 한 권 안 사 줬어요. 나보고 인사를 해도 내가 인사를 안 받았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1970.12.22(화) 전본부교회.  통일교회의 현재의 입장. 

- 15회 전국 성화 특별총회. 

 

037-054 성진이 어머니가 반대를 했기 때문에 이 가정의 틀을 중심 삼고 이러한 역사적인 소생의 과정을 거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 안 되면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성진 어머니가 해와의 입장이고 희진이 어머니는 마리아 입장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데리고 애급에 간 것처럼 희진 어머니도 희진이를 데리고 일본에 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탕감복귀역사는 이렇게 돌았습니다. 그래 철부지한 여러분들이 스승에 대해서 알아요?

 

희진이는 일본 오무라 수용서에서 3년 이상 자랐습니다. 원수의 철창에서 자랐습니다. 희진이는 세상의 어떠한 아들보다도 귀한 아들로 태어났지만 사랑할 수가 없었습니다. 천도를 세우기 전에는 사랑을 중심 삼고 부자의 인연을 맺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성진이 손목 한번 안 잡아 주었습니다. 아버지로서 한번 똑바로 대해 주지 못했다는 거예요. 냉정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내 아들을 사랑하기 전에 가인을 먼저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 희진 어머니는 바다를 건너가 일본에서 모험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적응하고 다시 돌아올 때는 민족이 환영하면서 맞이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 자체가 실패했습니다. 이것은 마리아가 실패한 것과 같은 결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진이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똑같은 인연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진이는 객향에서 태어나 객향에서 죽었습니다. 알겠어요? 

 

예수님도 객향에서 태어났습니다.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지에서 십자가에 돌아갔던 것입니다. 희진이도 어머니가 책임을 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와 같은 운명길을 갔습니다.

 

1969년도에 통일교회 식구 전체를 동원시켰을 때 식구들은 여기에 별로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희진이가 "통일교회 식구들이 안 나가면 나라도 나가야 되지 않느냐" 하면서 나갔다가 불의로 사고로 갔지만 지금도 희진이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희진이가 손해 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30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30대 이하, 10, 20대에서 죽은 영인들은 복귀할 수 없습니다. 그럼 그들을 누가 연결시키느냐? 그들은 영계에 가더라도 십자가의 혜택권내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희진이가 타계함으로 말미암아 10, 20대 권의 영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그 권내의 영인들에게 크나큰 복귀의 혜택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그가 죽었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매정했다는 것입니다. 천법은 엄하고 매정한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비로소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게 되었습니다. 6천 년의 역사 가운데 아담 예수 재림주 시대까지 탕감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해와에 해당하는 것이 성진 어머니이고 마리아에 해당하는 것이 희진 어머니이며 재림 시대의 어머니에 해당하는 것이 현재의 어머니입니다. 알겠어요? 

 

037-056 선생님은 무슨 십자가의 길을 가느냐? 지금까지 심정의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적인 십자가의 길을 갔지만 선생님은 심정의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차원이 다르다는 거예요. 그러한 대가를 치르면서도 선생님은 통일교회 교인들을 선생님의 아들 성진이보다 더 사랑합니다. 선생님은 내 자신과 혈족을 희생시켜서라도 대한민국과 세계를 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선생님이 예수님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 1970.7.28(화) 생사의 한계. 전본부교회. 

- 유효원 전 협회장 장례식 후 하신 말씀. 

 

032-337 우리 가정에, 우리부락에 천 사람, 만 사람이 희생되는 한이 있더라도 혹은 애기들이 죽어가는 일이 있더라도 슬퍼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그럴 때 오히려 인류를 위해서 역사적인 원한을 막아낼 수 있는 가정으로 서지 못할까 봐 염려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작년에 희진이가 갔습니다. 희진이가 전도 나가기 전에 원리 말씀을 다 듣고 하는 말이 "한국에 주님이 오시다니, 우리 집에 그런 일이 있다니···"라고 하면서 마룻바닥에서 뛰며 좋아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때, "오냐, 내가 하나님 앞에 효도하지 못한 것을 희진이가 대신 효도하여 하나님이 보시고 위로받을 수 있겠구나. 네가 그런 마음 바탕이라도 가졌구나" 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작년 여름에 축복받은 가정 전체를 동원하라고 명령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축복가정 전체가 동원되지 못했습니다. 그때 희진이가 "식구들이 가지 않으니 나라도 가야 되겠다"고 하는 말을 내가 들었습니다.

 

그런 말을 남기고 길을 떠난 뒤에 내가 식구들한테 "역사 시대에 한 번밖에 없는 거룩한 이 시대에 하나님 앞에 첫 번 제물 되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씨족은 복 받는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런 일을 회상하면서 희진이가 갔을 때 "하나님이여, 우리 가정에서 그럴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은 내가 개인의 슬픔이 아니라 우리 가정의 기쁨입니다"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가는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 1988.5.1(일) 본부교회. 34주년 협회 창립일.

175-347 성진이는 원필이가 맡고 희진이는 효원이가 맡고 효진이는 김 협회장(김영휘) 이 다 맡은 것입니다. 뜻이 그래요. 이놈의 자식들, 축복받았다는 녀석들이 자기 자식들은 밤을 새워가면서 먹을 것을 골라다 먹이면서 선생님 아들딸 대해서는 얼마만큼 자기 아들딸 이상 사랑했느냐 이거예요. 원리의 기준은 엄연히 살아 있습니다. 내 십자가를 내가 지는 거예요.

 

 

▣ 1981.11.22(일) 회고와 새 출발. 본부교회. 

115-285 내가 여편네를 돌보지 못하고 자식을 돌보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돌봐 주는 거예요. 그래, 우리 성진이도 그런 거예요. 내가 기르지 않았어요. 원필이에게 맡겨 가지고 전부 다 이렇게 나왔지만···. 우리 희진이도 누구에게 맡겼느냐 하면 말이에요, 유 협회장에게 맡긴 거라구요. 효진이도(1962.12.3.~ 2008.3.17) 누구에게 맡겼느냐 하면 김 협회장에게 맡긴 거라구요. 거, 왜 그 놀음을 해야 되느냐 이거예요. 랑하기 싫어서 그랬던 게 아니에요. 이런 역사적 사연이 배후에 있기 때문이에요.

 

1999.11.4(목) 국제연수원. 제물과 축복의 은사. 

- 귀국 환영 집회.

 

304-192 선생님 가정을 보라구요. 희진이, 희진 (1955.6.30~1969.8.1)이 갔지요? 그건 중학교 시대예요. 흥진이( 1966.10.23~1984.1.2)는 뭐예요? 고등학교 시대예요. 영진이( 1978.5.17~1999.10.27)는 대학교 시대예요. 불의의 돌변사가 벌어졌어요. 그런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구요. 대전환식입니다. 2000년, 9수를 넘어가는 1999년이에요. 9.9절. 삼십절, 전부 다 그것을 넘겨 놓기 위한 의례인데 전부 다 통일교회가 하나되어 가지고 여기 책임자들이 우리 선생님의 가정에 대해서 책임을 져 가지고 염려하는 무엇이 있었더라면 이렇게 안 되는 것입니다.

 

▣ 1969.12.14(일) 전본부교회. 추수의 주인. 

027-249 그래서 선생님은 "1969년도야, 가거라. 빨리 가거라. 통일 역군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빨리 가거라" 했던 것입니다.  

 

* 1969년도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렇게 우리는 심각한 입장에 섰습니다. 이러한 와중에서 희진이가 죽어갔지만 잘 갔습니다. 잘 갔습니다. 지상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소원의 날을 찾기 위해서 예수를 죽음의 자리에 내세우는 아버지와 똑같은 입장에 서게 된 것입니다. 원리적으로 꼭 들어맞았습니다. 뜻을 위해서 눈물을 머금고 가야 되겠습니다. 

 

지난 여름 방학에 가정들을 전체 동원하라고 명령했지만 누가 동원되었습니까? 누구 동원되었느냐는 것입니다. 동원되지 않았기 때문에 희진이가 나섰습니다. "아버님의 말씀대로 아무도 따르지 않으니 나라도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을 했을 때 나는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희진이가 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300리 이상 먼 길을 보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역사적인 노정을 탕감하면서 풀고 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눈물 흘렸느냐?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거리에서 난 사람은 불쌍합니다. 희진이도 예수님과 같이 거리에서 났습니다. 예수님과 똑같은 운명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0대에 민족으로부터 몰림 받는 자리에서, 이스라엘의 기반이 없는 자리에서 갔지만 희진이는 몰림 받는 자리가 아니라 기반을 가진, 부모를 중심 삼은 자리에서 갔습니다.

 

 

※ 효진 1962.12.3 ~ 2008.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