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가 되자 - 예수님은 신랑이요 신자들은 신부의 입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랑 신부, 참 좋은 말입니다. 제일 가까운 관계거든요.
▣ 1970.7.5 (일) 전본부교회. 우리의 자세.
032-144 우리는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순간이 바쁘다는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또 그래야 할 신앙길인 것을 알고 여러분은 항상 "영차 영차" 하면서 그 줄을 잡아당겨야 합니다. 찬송하며 박자를 맞추는 것도 기도하면서 아버지를 부르는 것도 그 놀음하는 것입니다. "나 살려 주소" 하는 것도 그 놀음이어어야 합니다. 그러나 잘못하면 다 틀어지고 맙니다.
보채는 자식에게 젖을 준다는 말이 있잖아요? "아버지! 나 죽소. 살려 주어야 될 하나님 아니요?" 그렇게 욕을 해도 살려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032-146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고 여기에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밤이든 낮이든 그저 각자가 갈 길을 가야 합니다. 나를 더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주고 지도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저 그 사람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가 산으로 가면 산으로 따라가고 바다로 가면 바다로 따라가고 시궁창으로 들어가더라도 팔을 붙들고 옷자락을 붙들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인연을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인연을 맺지 못하면 곤란합니다. 그 인연을 자기의 생명 이상으로 중요시하면서 잃지 않기 위해 떨어지지 않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은 신랑이요 신자들은 신부의 입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랑 신부, 참 좋은 말입니다. 제일 가까운 관계거든요. 신랑이 가는 곳이면 신부도 어디든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이 길을 위해서는 가다가 죽더라도 굴하지 않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이러한 절개와 충절의 인연을 점점 더 넓히며 승리의 한 외적인 천국을 향해 지금까지 발전해 나온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의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 길을 향하여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가고 있고 이 날에도 가고 있고 이 달에도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는 입장에서 우리는 앞에서 지도하는 친구와 앞에 가는 사람들의 마음 전체를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여서 알아 가지고 그것을 자기의 재산으로 삼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을 자기의 생명과 엇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나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말을 붙안고 죽어야만 거기에 살아 있는 사람은 그를 책임지고 부활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의 말을 듣다가 죽으면 불쌍하다고 동정이라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영계에 가 가지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라도 해 준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