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忍耐 없이 勝利할 수 없습니다.
▶ 참어머님
1)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지치지 않는 신앙과 굳센 의지 그리고 인내였습니다.
2) 신앙적인 고통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는 가장 귀한 축복입니다.
▶ 인내 없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참어머님 자서전
128 태어나서 성혼을 할 때까지 내가 걸어온 길은 하루도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성혼 후에도 갖가지 풍파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순종 그리고 사랑의 길을 한번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걸어온 길은 생각만 해도 견디기 어려운 가시밭길이었지만 그 무엇도 나를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사탄은 일찍이 예수님과 문 총재를 시험했듯이 나 역시 혹독하게 시험했습니다. 그 가혹하고 지독한 시련을 나는 인내와 헌신으로 이겨 냈습니다.
한편으로 그때는 나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깊이 느낀 때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고통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은 친히 나타나셔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129 아기를 넷 낳을 때까지 청파동의 어두컴컴하고 옹색한 방에서 출산했습니다. 다섯째부터 가까스로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것처럼 어느 누구 하나 배 아프지 않고 낳은 자식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겪어야 했습니다. 대여섯 살이 되어 골목에 나가 뛰어놀기 시작할 때부터 세상 사람들의 눈총과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 나라 안에서는 문선명의 아들딸이라 하여 비난받고 나라 밖에서는 동양사람이라고 차별대우를 받았습니다.
130 단지 문선명 한학자의 아들딸이라는 이류 하나로 고통을 겪어야 하는 아이들을 품에 안고 나는 한탄하거나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 문 총재가 세계 순회를 떠난 어느 날 세 살이 안 된 효진이가 방바닥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평상시에는 차나 자전거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날 때라 흰 종이에 어설프게나마 얼굴 하나를 그렸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아버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짐짓 물었습니다.
"효진아, 이 사람이 누구니?"
효진이는 대답하지 않고 다른 종이에 또 한 사람을 그렸습니다. 처음과 다른 얼굴이었지만 이번에도 영락없이 아버지였습니다. 평소 활달한 효진이는 그날 얌전히 앉아 그림만 그렸습니다. 하루 종일 아버지 얼굴만 그리면서 싫증을 내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림 그리기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에야 길고 긴 그림 그리기를 멈췄습니다. 세상을 다 얻은 듯 아버지를 행해 환한 웃음을 지으며 품에 안기던 그 애틋한 뒷모습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합니다.
만일 내가 기쁜 일만을 누려 왔다면 다른 사람의 깊은 내면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천국의 즐거움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지옥의 제일 밑바닥까지 통과하고 온갖 쓴맛을 다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나 스스로를 단련케 했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지치지 않는 신앙과 굳센 의지 그리고 인내였습니다. 그것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131 신앙적인 고통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는 가장 귀한 축복입니다. 그 시험을 이겨 내야 참다운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인내의 쓰디쓴 열매가 알알이 맺혀 어느 날엔가 빛나는 자랑이 됩니다.
1. 신앙적 인내
1) 생명줄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고 그것을 단단히 붙들어야 합니다.
▣ 1970.7.5(일) 전본부교회. 우리의 자세.
32-140 여러분은 어떻게 가야 되느냐? 여러분은 생명줄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고 그것을 단단히 붙들어야 합니다. 이것만은 놓쳐서는 안 된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길, 안 가려고 하면 야단납니다.
* 여러분들은 이것을 단단히 붙잡아야 됩니다. 이것은 손으로만 붙잡아서는 안 되고 내 몸에다 얽어매야 됩니다. 그리하여 이 생명줄을 잡아당겨야 합니다. 그 생명줄을 잡아당겨도 전진하지 못할 때는 눈을 똑바로 뜨고 방향만이라도 직시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서 그곳으로부터 어떠한 신호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어떠한 명령이 있기를,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무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구해 달라고 울부짖는 최후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신호를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 그런 자리에서 어떠어떠한 대책을 취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데 있어서는 … 오직 실천만이 사는 길입니다. 실천하는 것만이 생의 원칙에 접촉할 수 있는 동기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천운을 품고 분노를 터뜨리면 천지가 망하기 때문에.
3) 하나님께서 "됐다"고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1969.6.22(일) 전본부교회. 선악과 흥망성쇠.
024-039 내가 천운을 품고 분노를 터뜨리면 천지가 망하기 때문에, 내가 분해도 그냥 앉아 있습니다. 내가 화를 내면 세상천지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나는 참습니다" 해야겠고 하나님께서 "됐다"고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이런 사람을 만들자는 것이다.
4) 참지 못하여 타락한 인간.
▣ 1969.3.29(일) 신앙자의 태도. 전본부교회.
006-087 그다음에는 참을 줄 아는 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도 참아 오셨습니다. 에덴에서 죄를 지은 그날부터 이날까지의 역사 노정은 참음의 노정이었음을 부정할 자는 없을 것입니다.
* 하늘이 택한 이스라엘 민족은 오랜 역사를 거쳐 오면서 세계 어떤 민족 앞에 나타날 때도 유린당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몰리지 않은 시대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 민족의 하나님이요, 백성의 하나님이신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참아 나오신 것은 무엇 때문인가.
참지 못하여 타락한 인간이 되었던 연고로 참는 자가 승리의 한 날을 세울 때까지는 하나님도 참지 않으래야 참지 않을 수 없는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참지 못하고 뜻을 어겼으니 참는 한 자체를 찾기 전에는 하나님의 심정이 해원 될 수 없습니다.
* 이렇게 6천 년 동안 참아 나오시며 분한 마음이 사무쳐 있으시되, 심판의 권한이 있으시되 심판하지 못하고 참으시는 아버지의 서글픔과 아버지의 비통함과 아버지의 원통함이 있는 고로, 참는 것으로 출발하고 참는 것으로 끝을 맺어야 하겠습니다. 기독교에서 심판이라는 명사가 있는데, 그 심판은 무엇이뇨. 하늘이 참아 오신 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는 한때라는 것입니다.
5) 종교의 길은 참는 길이다.
▣ 1960.10.16(일) 우리를 위하여 당하신 일들. 전본부교회.
010-228 종교의 길은 참는 길입니다. 참고 희생하고 죽을 때까지 가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을 추구해 나오는 사람 중에는 참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참지 않으면 선한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습니다.
010-230 하나님이 가는 길, 하나님의 아들딸이 가는 길, 하나님의 백성이 가는 길은 어떤 길이뇨? 참고, 봉사하고, 희생하며 나아가는 길입니다. 여러분들, 참는 데 맹목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 하나님을 위하여 참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참아야 합니다. 한때가 있겠거늘 그때를 위하여 참읍시다.
2. 가정적 인내
1) "이분은 영원히 내 남편이니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 1981.3.29(일) 기도. 미국.
112-046 사랑하는 아내가 말이에요, 사랑하는 남편이 만약에 참지 못할 얘기를 하더라도 "이분은 영원히 내 남편이니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하면 그거 얼마나 아름다워요. 살아 나가다 보면 기분 나쁜 일도 많지만 사랑이라는 말은 기분 나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 사랑은 모든 것을 커버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수습할 수 있다는 거예요. 모든 것을 점령할 수 있다는 거예요.
자, 인내를 통해서 남편의 사랑을 안 미국 여자가 얼마나 있겠느냐? 자, 인내의 고개를 넘어 부모의 사랑을 체휼한 미국의 아들딸이 얼마나 있으며 미의 부모가 얼마나 있겠느냐?
2) 침묵과 인내는 평화를 이룰 수 있으니 어머니와 마찬가지다.
● 1996.2.18(일) 뜻과 우리의 정성. 우루과이 빅토리아 플라자 호텔
276-150 침묵은 뭐냐 하면 들은 것을 듣지 않은 것으로 인정하는 거예요. 침묵은 뭐냐 하면 들은 것은 듣지 않은 것으로 하는 거예요. 내가 본 것을 보지 않은 것으로 하는 거예요. 나를 중심 삼고 느낀 그것은 느끼지 않은 것으로 인정하는 거예요. 그것이 침묵입니다. 동양사상의 수도의 비결이 침묵입니다. 제일이 침묵이에요.
* 하나님은 침묵의 대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볼 때 "저 사람은 나를 닮았구나." 그런다는 거지요. 도와주고 싶다는 거예요.
부부생활 가운데서 남편이 이랬다고 말 한마디 하고 대꾸하면 점점 부딪치는 거예요. 침묵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거예요. 남편이 욕을 해도, 눈을 보면 눈을 왜 보나 하고 말이에요, 그것을 잊어버리는 거예요. 보지 않은 것같이, 느끼는 모든 전부도 전부가 없었던 것으로 하는 거예요. 없었던 것으로 하는 겁니다.
가정 파탄의 80%가 여자로 말미암아 벌어져요. 남자보다도 여자가 동기가 많다구요. 남자는 여자보다도 입이 무겁습니다. 여자는 뭐 와와와···. 또 표정이 안팎이 얇아요.
그래 이혼의 동기나 모든 가정의 파탄의 동기, 불순한 환경의 여건은 여자로부터 생긴다 이거예요. 남자들은 입이 두꺼워서 침묵을 지키고 행동을 몇 번 생각하고 하지만 여자는 즉각적입니다. 모든 폐단은 여자로 말미암아 생겼다는 거예요. 여자들은 주의해야 된다구요.
여자는 말이에요, 금 고리 하는 집게를 입에다 채워야 되겠다 이거예요. 여자는 장식품이 필요하잖아요. 귀고리 코고이 입고리까지 하자 이거예요.
* 여자는 이 침묵이 제일 중요해요. 큰 대갓집에 큰며느리는 침묵을 지키는 거예요. 보고도 잊어버리고 듣고도 잊어버리고 말하고 싶어도 참고 전부 다 참아 나오는 것입니다. 침묵과 인내는 평화를 이룰 수 있으니 어머니와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 라디오 남편이 아내에게 화장수 생일선물.
3. 사회적 인내.
ㄱ.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생각하여 행동하고 그다음엔 한 번 더 생각하고 참아야 된다.
▣ 1977.6.12(일) 한 번 더 생각하자.
093-319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생각하여 행동하고 그다음엔 한 번 더 생각하고 참아야 된다구요. 행동도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선생님은 참기 놀음하는 거예요. 인내라는 말은 듣기 싫은 말이지만 가장 귀한 말이라는 거예요. 그럴 적마다 한 가지 생각을 하라구요. 힘들지만 한 가지 생각하라구요. 참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내가 참음으로 말미암아 뭐가 되느냐?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복을 내가 전부 다 인계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 자, 여러분들 낙심하고 다 어려운 일이 많은 걸 내가 안다구요. 그렇지만 선생님과 같은 어려움은 당하지 않았다 이거예요. 나는 피를 토하고 죽는 경지에서도 이를 악물고 싸워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피를 토하는 자리에 가서도 "아버지, 날 살려 주소." 안 그랬다구요. 내가 죽더라도 난 졸자가 아닙니다. 난 죽더라도 하나님을 위해서 죽을 것이니 나를 위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런 기도를 하려고 했지 "아이고, 나 못살겠습니다. 나 고생시키지 말고 놓아 주소." 하지 않았다구요.
난 그런 기도를 배워 본 적이 없고 한 적이 없다구요. 우리가 어려운 것을 하나님이 다 알고 있다구요. 다 알고 있다구요. 그래도 가야 할 길이므로 어렵지만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기 때문에 보내는 거라구요.
ㄴ. 하나님의 전략 전술은 맞고 빼앗아 오는 것이다.
▣ 1994.3.12(토) 탕감복귀의 고개를 넘자. 중앙수련원.
- 일본 여성 수련회. 일본어.
256-018 양심은 하나님의 대표입니다. 육신은 사탄의 대표라구요. 이 두 가지에 의해 인간을 중심 삼고 하나님과 사탄이 서로 빼앗기를 하는 것입니다.
* 종교는 양심적인 사람들을 하나님 편으로 이끌어서 육신적 사탄의 사람들을 소화해 나가는 것입니다. 폭력으로, 강제적으로 끌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략 전술과 사탄의 전략 전술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략 전술은 맞고 배상을 받는 거예요.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선한 것이 먼저 맞았기 때문에 그것이 개인으로부터 맞고 가정으로 맞고 국가 세계로 그것이 결실될 때까지, 세계의 끝까지 맞고 와서 정리하지 않으면 친 사람들의 기준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맞고 배상을 받는 거예요. 그 배상받은 것은 사탄이 다시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략 전술은 맞고 배상받는 것입니다. 악마는 치고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생활에서는 인내를 강조합니다. 참고 견디고 극복하라는 거예요. 참는 자가 이긴다고 하는 그 내용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되는 것을 역사를 통해 바라보게 되니까 그런 결론을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참고 견디고 극복하라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戰略 戰術이 그런 내용이 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를 통해서 보면 쭉 해명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법은 맞고 복귀해 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4. 섭리적 인물 중에서.
1) 노아
2) 모세.
3) 예수.
ㄱ. 예수님께서 30여 평생을 통하여 자신이 참지 못한 환경에 처하게 되었어도 하나님의 뜻을 놓고 참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탄 대해 싸울 수 있는 주인공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 1956.5.27(일) 예수와 같이 부활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라지. 전본부교회.
001-080 예수님께서 30여 평생을 통하여 자신이 참지 못한 환경에 처하게 되었어도 하나님의 뜻을 놓고 참았기 때문에 또 사탄이 참을 수 없는 입장에서 참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기 때문에 또 참는 자의 표상으로서 세워졌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탄 대해 싸울 수 있는 주인공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5. 신앙자의 주의점.
1) 하나님을 모시는 데 있어서 제일 첫 순서는 참고 견디는 것이다.
2) 억지로 하는 것이다.
3) 끝까지 참고 견뎌야 한다.
4) 견디는 데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5) 참고 견디는 데는 무엇이 필요하냐? 감사하는 마음.
▣ 1971.5.4(화) 신앙자의 주의점. 중앙수련원.
- 축복가정부인 전도대원 수련회.
044-017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는 데 있어서 제일 첫 순서는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참고 견디는 거예요? 전체를 위해서 참고 견뎌야 됩니다. 전체의 목적을 위해서 중심적인 사상을 가지고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불평불만이 동거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데에서 하늘나라와 하늘의 터전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044-027 인내와 극복, 이 말이 뭐예요? 참고 견디라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은 손들어 보십시오. 하나도 없군요. 싫긴 싫지요? 그렇지만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 사람은 참고 견디며 살게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타락했기 때문에 참고 견디며 살아야 합니다.
인간 조상이 참지 못 하고 견디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그것을 탕감복귀하려면 끝까지 참고 견뎌야 됩니다. 이것이 탕감 원칙입니다. 참고 견디는 데는 사탄이 꼼짝 못 하고 굴복하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참고 견뎌야 되느냐? 끝까지 참고 견뎌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6천 년 동안 참고 견디어 나오신 분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분이 누구라고요?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그 아버지의 천품과 피살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그 아버지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세계에서의 생활철학은 참고 견디는 것이어야 합니다.
누구를 위해서라구요?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여기서부터 효의 도리가 시작되는 것이요 충의 도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나라도 세계도 해방의 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좋은 세계도 환영이요 나쁜 세계도 환영이니 제옥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러한 원칙 하에서 참고 견뎌야 됩니다.
* 견디는 데는 목적이 있어야 됩니다. 목적이 없으면 못 견디는 것입니다.
* 그다음에는 참고 견디기만 하면 안 됩니다. 참고 견디기만 하고 "아이쿠 힘들어라." 하면 되겠어요? 참고 견디더라도 참고 견디는 것 같지 않게끔 감사하며 찬송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참고 견디는 데도 감사한 마음과 찬양하는 마음을 갖고 참고 견뎌야지 불만하면서 참고 견디면 하나님이 오다가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는 데는 무엇이 필요하냐? 뭐라고요?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참지 못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밑바침 되지 못하면 참더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이 같이 하시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하느냐? 보라구요.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내려다보고 사는 거라구요. 올려다보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래도 통일교회를 믿고 하나님을 알고 죽더라도 하나님을 위해서 죽겠다고 하는데 통일교회에 들어오지도 않고 말씀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 그러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하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찬송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거라구요. 감사의 마음과 찬송의 마음을 앞 놓아 가면서 참고 견디는 곳에 하나님께서 눈물을 흘리며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이 이상도 참겠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야, 아무개야, 더 이상 참지 마라, 그 길을 더 가지 마라." 하고 정지시키는 것이 복귀의 자리입니다.
6. 참아야 하는 이유.
1) 싸우게 되면 하나는 깨지게 마련이라구요.
2) 재출발의 동기
▣ 1975.3.2(일) 행복과 불행의 기로. 배리타운.
076-214 참는다는 뜻을 가진 인내라는 말이 가장 귀하다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어요. 누가 한마디 말을 해서 성이 나지만 참자 이거예요. 자, 저기서 한마디 "왝" 하면 나도 "왝" 해 가지고 주먹이 왔다 갔다 하다간 내가 불행하게 되는 거예요.
다리가 부러지고 싸움만 하게 되면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진다구요. 싸우게 되면 하나는 깨지게 마련이라구요. 그건 원칙이라구요. 깨지거나 파괴된다구요. 또 깨지지 않은 그 자체도 누가 와서 깨뜨려 버린다 이거예요.
* 자, 이것은 우리가 순리적으로, 생리적으로 분석해 보더라도 내가 왜 성을 내 가지고 내 기분 나쁘게 하고 말이에요, 내가 왜 말을 잘못해 가지고 그 입으로 말미암아 생리적으로 좋지 못한 변화를 얼마나 일으키나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구요.
그 미워하고 다 이런 건 독이에요. 독. 毒이라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럴 때 "참는다. 난 참는다. 또 그러겠으면 그래라." 하며 그저 참아 나오게 되면 어떻겠어요? 그걸 생각해 보라구요. 암만 찾아와도 참는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훌륭한 것인가를 발견해서 알 거라구요.
참는 사람은 앞도 바라보고 뒤도 바라보고 동서남북을 전부 다 비판할 수 있다구요. 벌써 참는 사람은 저쪽 입장을 생각도 해 주고 또 젊었을 때 늙었을 때 자기도 부모를 가져 보고 자기도 아들을 가져 보고 사방을 다 생각할 때 나도 그럴 수 있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에 "아, 그러니까 나도 참아야지." 하며 자리를 잡는 거라구요.
그것을 벌써 정신적으로 모든 싸움에서 환경을 전부 다 정리해 가지고 내 편을 만들었다는 거라구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그런 생각을 못 하고 있으면 "뭐야" 하면 대번에 "야" 이러게 됩니다. 그러면 그다음엔 "뭐냐?" 그다음엔 무슨 말이 나오느냐 이거예요. 이 참는다는 게 얼마나 귀하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076-218 자,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인내가 얼마나 귀하다는 걸 알았을 거예요. 인내가, 인내가 얼마나 귀하냐. 자, 이렇게 보게 되면 인내는 재출발의 동기요, 재창조의 동기가 될 수 있다 하는 것을 발견할 거예요. 참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용서해 줄 수 있다 이거예요. 그렇게 되면 나는 언제나 저길 점령할 수 있는 거예요.
*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참는 것입니다. 참아요. 아담 해와가 죽는 자리에 나갈 때 참았고 십자가에 예수를 데려다 땅땅 못을 박는데도 참았다 이거예요.
자, 알고도 모르는 척하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안 그런 척하고 대하니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렇잖아요? 그 사람이 자기에 대해 전부 다 알고도 모르는 척하고 대해 주고 그러면 얼마나 기가 막혀요?
* 자, 너희 집안에서도 그렇다구요. 가정에서도 형제들이 뭐 야단하더라도 참고 참고 이렇게 나가면 부모나 누구나 전부 다 그 앞에서 다 축복해 준다구요. "재는 두고 보자!" 하고.
3) 질기고 강한 사람이 또 인내력이 강한 사람이 남아지는 거라구요.
▣ 1975.3.12(수) 남아지는 사람들. 배리타운.
076-315 강한 사람이, 질기고 강한 사람이 또 인내력이 강한 사람이 남아지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열 번 쓰러지더라도 열 번 일어설 수 있다, 그래야 된다구요. 그거 이해되느냐고요? 그렇지요? 그렇지 않느냐구요?
여러분이 생각해 봐요. 기독교가 얼마나 질겼느냐 이거예요. 400년 동안 로마 박해시대에 저 지하에 들어가 가지고 고생을 하면서도 그걸 뚫고 나가려고 투쟁을 했다구요. 계속적으로.
그런 것을 선생님이 생각하면서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느냐, 남아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를 환영하는 곳에서 남아지는 것은 그건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자기를 반대하고 원수시하는 그곳에서 어떻게 남아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