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원리를 중심 삼고 볼 때는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주관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만 사랑을 중심 삼고는 사탄이 주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1969.5.4(일) 전본부교회. 예수와 우리.
- 제2차 세계 순회 귀국 후.
022-246 아담 한 사람을 중심 삼고 볼 때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한 창조주로서 원리적으로 그를 취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 아담을 취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었느냐?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해서 끌고 가요? 못 끌고 갑니다. 사랑을 중심 삼고 아담과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아담이 안 끌려가려야 안 끌려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본래 창조 원칙을 두고 볼 때 사랑의 인연이 맺어지면 반드시 그 상대의 주관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의 주관권 내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를 맺으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동네에서 한 총각이 부잣집 맏딸과 사랑으로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면 비록 그 총각이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는 더벅머리 총각이라 할지라도 그 부잣집 맏딸은 그 총각에게 꼼짝없이 걸려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녀가 아무리 부정하고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총각이 한마디만 선포해 놓으면 아무리 부잣집 맏딸이라고 해도 꼼짝없이 주관당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법도는 주관받는 것이 원칙입니다. 창조의 원칙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을 중심 삼고 사탄이 먼저 인간과 관계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공식적으로 사탄의 주관권 내에 들어감으로써 사탄이 아담 해와는 내 것이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리적인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은 창조한 주인의 입장으로서 아담 해와를 완전히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어야 되겠는데 사탄이 옆에서 사랑의 관계를 맺어 가지고 아담 해와를 완전히 주관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으니 여기에서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를 놓고 둘이 서로 자기가 가져야 된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인연이 맺어지면 반드시 주관받게 되어 있는 것이 원리인데 이 원리를 세워 놓으신 하나님 자신이 원리를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탄이 비법적으로 개입되었다고 해서 사탄을 쳐서 없애 버린다면 하나님 자신이 세우신 사랑의 원리 자체를 없애 버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할 수 없지요. 역사적인 모든 문제가 여기에서부터 벌어져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를 분립시켜 가지고 고장난 것을 고장나지 않은 것과 같은 입장으로 수리해 나온 것이 구원 섭리 역사인 것입니다.
사랑을 먼저 한 사람이 상대를 주관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법도입니다. 그러면 사랑을 누가 먼저 했느냐? 천사장과 해와가 먼저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해와와 아담이 인연을 맺은 것입니다. 창조 원리를 중심 삼고 볼 때는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주관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만 사랑을 중심 삼고는 사탄이 주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022-247 그러니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랑의 법도가 거꾸로 되었으니 이것을 원리 원칙대로 회복해야 됩니다. 그러자면 아담을 하나님 편과 사탄 편으로 갈라놓아야 되는데 아담을 직접 가르면 죽어 버리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아담의 아들들을 통해서 나누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의 아들들은 사랑의 열매이니만큼 하나님도 주관할 수 있고 사탄도 주관할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가인과 아벨을 각각 하늘 편과 사탄 편으로 갈라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번 사랑은 천사장과 해와의 사랑이기 때문에 장자인 가인을 그 사랑의 표시체로 사탄 편에 세우고 둘째 번 사랑은 해와와 아담의 사랑이기 때문에 차자인 아벨을 그 사랑의 표시체로 하나님 편에 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의 승패는 하나님이나 사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은 사탄에 의해서 이루어졌지만 타락한 장본인은 인간이므로 그 인간 자신에게 싸움에 승패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동 여하에 따라서 구원 섭리가 이루어지느냐, 못 이루어지느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 가정에서부터 구원 섭리를 시작하셨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