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하나되는 길만이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 11가지.

true2020 2021. 4. 12. 20:31

▣ 일본 제2지구 참어머님 말씀. 2021.04.11.

 

* 한국과 일본이 하나되는 길만이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 2018.7.1. 사이타마.

- 일본 선교 60주년 기념대회

 

* 나는 일본의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한국과 손잡고 나가길 바랍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용서할 수 없는 민족입니다. 그러나 하늘 섭리를 놓고 참부모는 일본을 세계를 위하여 사는 해와국, 어머니의 나라로 축복했습니다.

 

나는 한일해저터널을 일본과 한국이 하나되어서 만들고 남북이 하나된 자리에서 유라시아를 거쳐서 전 세계로 향할 수 있는 평화고속도로는 만들고 싶습니다.   

 

1. 그 김일성 자신도 일본과 한국이 하나가 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2. 국가적 감정을 초월해서 형제와 같은 심정권을 만들 것인가?

- 한일 축복결혼.

 

▣ 1971.1.30(토) 나라를 구하여. 중앙수련원.

- 입교 3년 미만의 일본 청년 식구 292명 원리 교육 및 승공 교육.

 

040-123 공산주의자 가운데 가장 악랄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김일성인 것입니다. 그 김일성 자신도 일본과 한국이 하나가 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가 만일 하나가 될 경우 남쪽으로 침략한다든가 하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지금의 아시아의 정세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들 통일교회 식구들은 일본의 통일교회와 한국의 통일교회가 어떻게 하면 양국 간에 있어서 아직까지 남아 있는 역사적인 국가적 감정을 초월해서 형제와 같은 심정권을 만들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여기에서 일본이라든가 한국이라든가 하는 나라를 개재시켜 생각하는 입장에 섰을 경우에는 하나님이 뜻하시는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았을 때 한국과 일본의 식구들은 일체가 되어 새로운 국가 복귀라고 하는 목표를 정해서 하나님이 찾아 나오신 그 나라를 전체적으로 복귀시킬 때까지 밀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통일 식구의 세계적 사명인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한국의 통일 식구는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그 역사적 전통을 일본 식구들에게 전해 주고 일본 식구들은 같은 입장에 여하히 세우겠는가 하는 것이 지금 현재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역사의 배후를 달리하는 이러한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자신의 나라, 자신의 국내권에 있어서는 언제든지 일본이면 일본을 생각하게 되고 한국이면 한국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신의 국가를 초월해서 한국도 일본도 한국 통일교회의 식구도 일본 통일교회의 식구도 함께 지금까지의 국가의 관념을 초월해서 새로운 국가 편성이라는 목적으로 일치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국가가 하나의 나라를 위한 매개체로서 노력한다면 이것은 하나님 편으로서 영광스러운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탄이 역사하던 세계에는 그러한 일은 없었습니다. 하나의 나라, 하나의 주권을 세우기 위해서 두 민족이 함께 협력해서 하나의 민족의 주권을 만들었다고 하는 역사는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는 우리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두 국민이 하나의 나라의 주권을 세우기 위해 희생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투입하여 거기에 보조를 맞춘다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역사에는 없었던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편에서 자랑하는 조건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이루기 위해 그 선두에 서는 나라는 역사적으로 굉장한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 한국의 통일교회와 일본의 통일교회가 만일 하나가 되어 하나의 나라를 복귀했다고 하는 경우에는 두 국민이 결합되어진 그 전통은 금후의 역사 과정에서 여러 나라들에게 모범이 되는 전통적 기반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전통을 어떻게 해서든지 깨끗하고 참된 전통으로써 하나님 편에 세우는 것이 일본과 한국이 지금부터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통일 식구의 사명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감정적 틈새 즉 경계선을 엿볼 수 있도록 어떻게 그 장애 요소들을 빨리 타파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들은 축복을 중심으로 한 국제결혼 문제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될 수 있으면 빠른 시일 내에 일본 여자는 한국 남자와, 한국 여자는 일본 남자와 이렇게 감정적으로 결합을 하는 축복의 기반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3. 일본선교

 

▶ 일본선교

 

▷1958.7.15. 최봉춘 선교사 일본 선교 위해 부산 출항.

* 1955.3.24 이화여자대학 교수 등 5명 면직. (양윤영, 한충, 최원복, 김영운, 이정호)

* 1955.5.11 이화여자 대학생 14명 퇴학

* 1955.7.4 병역법 위반 및 불법감금 이유로 서울 중부 경찰서 구속

* 1955.10.4 서울 지방법원 무죄 선고

* 1955.10.7 용산구 청파동 1가 71번지로 교회 이전

* 1956년 충남 계룡산 갑사 휴양 기도 중, 일본이 아시아에서 다시 문제가 될 때가 온다는 것을 예감하시고 한국 정부가 무고誣告ぶこく (사실이 아닌 일을 거짓으로 꾸미어 해당 기관에 고소하거나 고발하는 일.)하게 참아버님을 투옥하셨던 희생을 조건 삼아 밀항 선교를 계획하심.

* 1958.7.17 일본 선교

 

▷ 崔奉春 (일본명 西川 勝, 호적상 이름은 崔翔翊 최상익)

 

* 27, 8세 때 先親(남에게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를 이르는 말)이 새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쓰지 않고 있다가 원리를 듣고 나 후 개명했다고 한다)

* 1925.4.7 (음) 부산 동래군 사하면 구신평동. 부 최봉윤 씨와 모 홍남이 씨 사이 3남 4녀 중 맏아들로 태어남.

* 2살 때 양친을 따라 大阪 나니와에서 살았다. 해방 직전에 귀국했다.

 

▷ 간증 중에서.

 

* 부친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행사니 뭐니 돈을 마구 쓰고 친척과도 인연을 끊고 살았기에 부친을 원망하며 살았다. 종교라면 지긋지긋하게 생각했다.

 

* 기독교 부흥회에 한 부인의 권유, 산상 기도회.

뒷자리에 숨어서 지냈고, 시간이 나면 산에 가서 놀았다.

일주일 기도회가 끝나는 날, 여자 부흥사가 "여기에 악한 사람이 있는가? 은혜가 내릴 때가 되었는데 내리지를 않는다." 하면서 모인 사람들을 향해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거짓된 맘으로 기도회에 참석했는데 "야! 야단났다", 뭐라 기도할 줄을 몰라 "하나님, 안녕하십니까?"'라고 기도를 했다.

 

* 그다음날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 당신이 2천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세상을 구하셨다고 하셨는데 이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못 살고 이렇게 고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들을 한 번 더 보내시어 이 세상을 구원해 보십시오."라고 하는 기도가 나왔다.

 

* 나는 영적인 체험을 통해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때가 28살이었다.

 

* 국방부 문관 통역장교로 근무

* 한국동란 당시 미군 2사단 통역관으로 복무 중 부상당해 제대.

* 1952년경 일본에 밀항. 도쿄 성결교 신학교에 입학-> 강제 송환

* 임마누엘 수도사 전도사.

* 1956.4.10. 미국 문화원에서 근무하던 송도빈 장로의 권유로 입교.

 

* 지방 순회에서 돌아오신 참아버님께서 33, 34세에 해당하는 자는 손들어 보라고 하셨다. 그때 손을 든 최 선교사를 보시고, '예수님의 재출발 연령이니 장차 세계 선교 사명을 해야 한다'고 하시며 '공부와 훈련을 계속하라'고 말씀하였다.

 

* 1957.6.30. 최용석 씨가 동행했다. 새벽 기상 즉시 갑사 뒤뜰 소나무 숲에서 참아버님을 독대하고 2시간 가까이 말씀을 나눴다. 이때 선교사에게 내린 두 가지 밀지는 1) 일본 선교 개척과 2) 당시 일본 밀항 후 고난의 길을 걷고 있던 희진 님 모자의 보위에 있었다.

 

* 아침 식사를 했는데 참아버님께서는 당시 식사 자리에는 늘 계시지 않았다고 한다.

 

* 여기에 일찍이 최 씨(崔先吉) 집안으로 인해 좌절된 섭리 역사를 재탕감하기 위해 다시금 최 씨 인물을 내세우신 배후의 참사랑의 뜻이 개재되어 있었다.

 

* 1958년 6월 7월 밀약한 선장의 약속 파기 그리고 발각으로 두 번이나 실패.

: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갔다.

: 밤 12시경에 밀선이 와서 타게 되었는데 그 배의 안내자는 경관이었다.

 

* 1958년 6월 15일 밤 드디어 밀항선에 올랐다.

: 1958년 6월 17일 밤 오후 9시 北九州市 小倉港 - 상륙 허가 못 받음 →18일 山口県岩国 향해 출발→ 22日広島 -허가 안 남 →呉항해 해상보안부 경비정에 연행

 

* 1959년 2월 18일 130일간의 형기 만료

; 야마구치에서 시모노세키로 이동. 기차로 5시간.

; 다행히 그날 떠나는 배가 없었다. 5일간 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 수용소 억류 중 3월 15일 최후 수단으로 금식을 결행해 열병을 앓게 됨.

; 양쪽 심장과 폐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 3개월 요양 지시

; 그 무렵 친분을 맺은 上野 씨의 도움으로 4월 중순 탈출 성공.

; 厚狹驛에서 동경행 급행열차에 탔다.

 

* 1959.10.2. 금요일 오후 7시 15분 新宿 4명이 모여 첫 예배.

(아버님께서 하숙하신 미츠하시 집에서 보도로 5분 거리)

 

▶ 한일기본조약 조인 1965.6.22. 4개 협정과 25개 문서. 1965.8.14.국회 비준. 1965.12.18. 한국 중앙청 제1회의실 한일 양국 비준서 교환.

 

- 1951년 10월 20일부터 5차례 회담. 일본은 개인 배상 제안, 한국은 국가 배상 요구.

- 1951.9.8.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및 미일안전보장조약. 전쟁 기념 공연 예술센터 48개국 참가 서명. 1952.4.28. 발효. 연합군 최고사령부에 의한 군정기가 끝나고 일본은 주권회복. 1955~1959년에 걸쳐 미얀마 인도네시아 필리핀 남베트남, 4개국에 대해 전쟁 국가 배상했다.

 

- 박정희 1917.11.14.~1979.10.26. 일본육군사관학교 57기 입학, 1944년 수석으로 졸업. 1961년 5월 15일 저녁부터 18일 정오까지 임시적 군정실시 목적으로 일으킨 군사반란. 제5대 대통령 선거 당선. 5,6,7,8,9대 대통령으로 재직

 

▣ 1965.2.13(토)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게 되는 그 과정이 어떠한 것이냐. 샌프란시스코교회.

015-072 일본에 선교사를 보낼 당시에는 한국과 일본이 정상적인 국교가 수립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적인 수속을 밟지 못한 채 조그마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야만 했습니다.

 

▣ 1971.9.5(일) 제물의 완성. 전본부교회.

048-098 한국과 일본과 중국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 일본 중국이 어떻게 하나가 될 것이냐? 경제력 가지고는 안 됩니다. 무력 가지고도 안 됩니다. 사상적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통일사상을 내세워야 합니다. 중국의 장개석도 이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를 국가가 모르는 가운데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일본에 선교사를 보낼 때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에 밀선을 태워서 보냈습니다. 그때는 이화여대 사건으로 내가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갔다 나온 때였습니다.

 

"이 나라의 금후의 갈 길은 일본을 품지 않으면 안 된다. 천운이 그 길을 걸어오기 때문에 일본을 품어야 된다"고 하면서 보냈습니다. 일본을 품는 데는 아는 사람이 그 깃발을 꽂아야 되겠기 때문에 내가 법치국가의 한 국민으로서 위법인 줄 알면서도 보낸 것입니다.

 

현재는 이것이 법에 위배될지 모르지만 금후에 한국이 가야 할 길이 그 길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당연코 보냈던 것입니다.

 

그때 내가 감옥에서 나와 가지고 이 교회를 200만 원 빚을 내 가지고 사서 젊은 사람들을 보내 대청소를 하려 사흘 만에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1958년 8월에 최봉춘이를 충청남도 갑사 뒷산으로 불러 가지고 일본 선교의 특명을 내렸습니다. "너는 현해탄을 건너야 된다. 죽기 전에는 돌아오지 못한다. 하나님의 뜻은 이렇게 준엄한 것이다" 이렇게 다짐시켜 가지고 밀선을 태워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1차에서 걸리고 2차에서도 걸리고 3차 만에 간 것입니다. 3차에 갔어요 오오무라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십 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죽더라도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기 때문에 꾀병을 부린 것입니다. 사흘 동안 소금을 먹어 몸에서 열이 나니까 병원에 가게 되었는데 휴식시간에 탈출을 했습니다. 그렇게 도망을 해 가지고 길을 닦아 놓은 것이 현재의 일본 통일교회입니다.

 

 

4. 한일해저터널

 

▶ 한일해저터널

 

▣ 1971.7.11(일) 개척자. 전본부교회.

045-327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는 무엇을 할 것이냐? 정부에서는 경부 간 고속도로를 부설했지요? 그 정도 해 가지고는 기분이 좋지 않아요. 무엇을 할 것이냐? "서울에서부터 동경까지 직행할 수 있는 지하철을 만드는 것이나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를 흙으로 메꾸는 정도 가지고는 기분 나쁘니까 세계에 있는 좋은 반석들을 전부 다 갖다가 전 세계를 연결하는 길을 닦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걸 생각해야 합니다.

 

* 경부고속도로 개통일. 1968.2.1.~1970.7.7.

서울~수원 22.4킬로미터 1968.12.20.

수원~오산 13.8킬로미터 1968.12.30.

오산~천안 38킬로미터 1969.9.2.

천안~대전 67킬로미터 1969.12.10.

대구~부산 123킬로미터 1969.12.29.

 

대전~대구 152킬로미터 1970.7.7.

 

5. . 한국과 일본은 한 나라라고 선포.

 

▣ 1999.3.3(수) 통반 격파와 훈독회. 제주국제연수원.

- 1999.2.7. 3억 6천만 쌍 국제합동결혼식. 서울.

 

300-156 한국과 일본이 한 나라라구요. 전부 다 일본에서 이번 축복을 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일본은 탈락되는 거예요. 끊어 버리야 돼요.

 

어머니가 자식을 결혼해 줘야지요. 안 그래요? 주동적으로 어머니가 하는 거지 아버지가 하는 거예요? 이것을 못 하기 때문에 전부 다 일본을 차 버려야 된다구요.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아요, 선생님이?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 모든 간부들이 모인 가운데서 이것을 총의에 의해 가지고 협력해서 세계를 수습한 후에 일본과 한국이 이행할 수 있게 해 가지고 한국과 일본이 한 나라라고 선포한 거예요. 한 나라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일본이 남아지질 못합니다.

 

6. 한국과 일본은 옛날에 원수였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가 안 된다. 이제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하나님의 사랑을 세우자.

 

▣ 1970.1.1(목) 승리적 통일전선. 전본부교회. 참하나님의 날.

027-343 한국과 일본은 옛날에 원수였습니다. 이마를 맞댈 수 없고 세포를 접하여 결혼하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한이 맺힌 역사적인 원수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이제는 주체와 대상이 되어서 통일전선을 펴자는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하나님의 사랑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민족의 사랑보다 강한 것입니다. 역사적인 어떤 사랑보다도 강하기 때문에 그 사랑은 민족도 초월하는 것입니다.

 

7. 뜻 가운데서 한국과 일본이 어떻게 하나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

 

▣ 1970.5.1(금) 하나되어 기도하라. 남산 성지.

031-112 지금 한국과 일본이 뜻 가운데서 어떻게 하나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국 정부도 일본의 우리 국제승공연합에 대해서 자못 큰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WACL(세계반공대회)이 일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현재 한국 정세를 두고 볼 때 1972년도까지가 중요한 시점입니다. 그러니 뜻을 아는 우리로서는 거기에 대비해서 금년에 더더욱 확고한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WACL대회는 중요한 사명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먼저 선생님을 중심 삼고 내적인 단결을 해야 하고 그다음은 외적으로 한국 식구와 일본 식구가 단결하여 하나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공동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8. 한국과 일본과 중국.

 

▣ 1970.6.3(수) 아벨의 사명. 전본부교회.

031-223 일본이 한국을 돕게 되면 일본 나라가 하늘 앞에 빨리 복귀된다는 것입니다.

 

* 아담형 국가인 한국과 해와형 국가인 일본 그리고 천사장형 국가인 중국(대만)만 하나되면 아시아권의 에덴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계적인 천사장형 국가는 미국이다.

 

▣ 1971.1.3(일) 예수를 중심한 섭리와 우리의 사명. 전본부교회.

- 서울시내 중심 식구. 예수님 탄신일 특별식.

 

038-118 중국은 중국 대륙 전체를 통일했다가 공산당한테 빼앗기고 지금은 대만을 중심 삼고 나라의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자유중국과 중공이라는 두 나라로 분립되어 두 주인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생겨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대만을 중심 삼은 중국의 살 길은 일본을 붙드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렇지요? 딴 방법이 없습니다. 한국보다 일본을 붙들어야 됩니다. 천사장이 누구로 말미암아 구원되어야 합니까? 해와로 말미암아 구원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자기가 잘났다고 꺼떡거리다가는 구원이 안 됩니다. 이제는 중국이 할 수 없이 "일본에서 살려 주소" 할 수 있는 권내에 들어오거든, 그러한 때가 오거든 우리의 때가 가까워 온 것을 알라는 겁니다.   

 

9. 일본이 한국을 돕지 않기 때문에 일본에 있는 통일교회가 한국을 도와야 합니다. 

 

▣ 1971.1.3(일) 예수를 중심한 섭리와 우리의 사명. 전본부교회.

- 서울시내 중심 식구. 예수님 탄신일 특별식.

 

038-120 일본이 한국을 돕지 않기 때문에 일본에 있는 통일교회가 한국을 도와야 합니다. 일본에 있는 통일교회는 일본을 대표한 입장입니다. 일본 국민 1억을 대표한 것이요, 일본 정부를 대표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간 통일사상을 신봉하는 일본 통일교인들이 적극적으로 한국을 도움으로써 일본 정부가 돕지 않는 것을 탕감 복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아무것도 없지만 앞으로 일본 나라의 돈을 갖다 써야 됩니다.  

 

10. 참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 1971.2.15(월) 참된 인생길. 종로교회.

- 서울 9개 지구 야간 순회.

 

041-169 참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참이라는 것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이라는 것은 한국에 있다가 미국에 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과 일본이 과거에는 원수였지만 원수의 나라였다고 해서 한국에서의 참이 일본에서 참이 안 될 수는 없습니다. 원수 나라의 것이라도 그것이 참이라면 참인 것입니다. 또 그것이 대한민국에서 참임에 틀림없는 것이라면 지구성의 한쪽 끝에서 또 다른 끝으로 가더라도 참인 것입니다.

 

* 이런 면에서 볼 때 참이라는 것은 언제나 똑같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참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진짜 참이라는 것은 세계에 몇 개씩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진짜 참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미터의 원리 같은 것도 보면 1미터의 원리는 오직 하나입니다.

 

11. 이 대한민국을 아시아 제국과 세계와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 1971.3.1(월) 시련과 현실 극복. 남산 성지.

042-141 이것은 비단 우리 민족만 소망해 가지고는 이 38선이 해결될 수 없는 것입니다. 강력한 공산주의 사상으로 정신 무장이 되어 이념화된 체제 밑에서 단결된 공산국가와 대결하고 있는 우리 한국은 그들 이상의 정신적인 단합과 정신적인 결합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지 않고는 그들을 막아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이 단독적으로 대항해 가지고는 이것을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민족이 대한민국 단독적인 입장에 있을 것이 아니라 이 대한민국을 아시아 제국과 세계와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어떤 개인 혼자서 시련을 극복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국가의 운명을 타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혹은 대한민국 한 나라가 시련을 극복했다 하더라도 공산체제와 공산국가를 중심 삼아 가지고 연결되어 있는 이 배후를 우리가 능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국을 중심 삼아 가지고 아시아 제국과 연결시켜야만 될 공동적인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한국과 일본 그리고 아시아 제국이 중심적인 가치를 중심 삼고 하나의 이념화된 체제를 갖추어 중공과 소련을 중심한 공산체제에 어떻게 대항하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042-145 만일 우리가 이 사상무장을 중심 삼고 책임질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김일성은 반드시 놀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중공도 역시 문제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과 중국을 어떻게 일원화된 사상체계로 만들어 나가느냐.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